금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느지막한 아침 시간이면 한 주 동안 쓴 ‘세 줄 일기’를 꺼내 다시 읽는다. 때로는 1년 전에 쓴 일기를 꺼내 다시 읽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는 기록 속의 나는, 그러니까 한 주 전, 혹은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기도, 다르기도 했다.
어마어마한 변화는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내용들을 엑셀로 옮겨 적어보았다. 내가 무엇에 끌렸고, 무엇에 에너지를 빼앗기는지 궁금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나를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1년여 간의 세 줄 일기 내용 중 반복되는 내용들을 노트에 옮겨 적어보니 다음과 같은 리스트가 나왔다. 결과는 조금 뜻밖이었다.
만남과 소통, 교감 있는 대화 / 46회
미루는 습관, 나태함 / 42회
가족들에게 짜증, 화냄 / 25회
관계, 소통의 불편 / 20회
산책 등 스몰 스텝에 관한 것들 / 17회
용기 있는 도전 / 13회
걱정과 염려 / 6회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사람 만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한 친구와 약속을 해놓고는 당일에 핑계를 대고 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딱히 그 친구가 싫어서가 아니다. 그저 ‘혼자 있는 시간’이 남들보다 더 많이 필요할 뿐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어려웠고, 혼자 몰입해서 일하기를 훨씬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그렇게 일하는 편이 훨씬 더 좋았다. 그런 내가 만남과 소통, 교감 있는 대화에서 가장 큰 삶의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니…
또 한 가지 놀랐던 점은 가족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였다. 세 줄 일기에 쓰인 솔직한 기록은 1년에 무려 25번이나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평소엔 조용하고 얌전한 스타일이지만 임계점을 넘으면 무섭게 화를 내는 나를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에 두어 번은 꼬박꼬박 그랬었다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몰랐던, 혹은 외면하고 싶었던 ‘진짜 나’를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내 안에 숨은 욕구 알아채기
하루는 친한 회사 동료가 ‘비폭력 대화’ 세미나를 다녀온 후 배운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건강한 대화법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숨은 ‘욕구’를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라 동료가 준 ‘욕구 리스트’ 카드를 앞에 두고 내가 써온 일기를 그들의 언어로 정리해보았다. 그랬더니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
‘마음의 여유’와 ‘삶의 질서’가 중요하고
‘새로운 발견과 자극’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기를 즐기며
‘삶의 의미와 보람’에 관심이 많은 사람,
그리고 ‘소통과 도전’을 통해서 살아갈 ‘용기’를 얻는 사람.
나는 이런 욕구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 욕구들을 무시하지 않고 조금씩 채워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선택한 아주 작고 사소한 방법이 스몰 스텝 이었다. 나는 이 내용을 노트 맨 앞에 써놓고 그에 맞는 스몰 스텝을 하나씩 추가해가기 시작했다.
세 줄 일기를 써왔던 것처럼 ‘마음의 여유’와 ‘평안’을 얻기 위해 하루 10분 일찍 일어나 책을 읽었다. 인상 깊은 명언이나 책 속 구절들을 골라 카톡을 통해 지인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성경 한 장을 읽고, 산책을 했다. 산책을 하며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듣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검색해 듣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였다.
매일 아침 관심 키워드로 기사를 검색해 저장하고, 좋아하는 칼럼니스트의 글을 필사하는 것은 단순히 자기 계발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것이 ‘새로운 발견과 자극’을 주었기 때문이다. TED 강연을 통해 세상의 앞선 생각에 귀 기울이고, 수백 개의 다큐멘터리 리스트를 만드는 이유는 이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우고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을 통해 관심사와 생각을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는 일은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매번 강의를 앞두고 전전긍긍하면서도 ‘자기 발견’ 과 ‘브랜딩’이란 주제로 강의를 계속하는 이유도 그 자체가 내게 ‘도전’이자 ‘용기’를 주고 그 과정을 통해 만족하고 성장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