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이스라엘투데이

20 주년을 맞은 오슬로는 실패작

“아마 지금쯤이면 제 아버지도 오슬로 협정이 실수였다고 인정하실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달리아 라빈이 히브리어 신문 에 말했다. 달리아는 암살 당한 이츠학 라빈 총리의 딸이다. 이츠학 라빈은 1993년에 성경의 중심 무대였던 이스라엘의 많은 땅을 PLO 테러 수장 야세르 아라파트에게 넘겨주는 것에 동의했다.회의론은 더 깊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싱크 탱크인 아아갈 모콧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설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있던 난민들의 ‘귀환법’요구를 포기하고, 이스라엘을 유대 민족의 고향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53%의 이스라엘인들은 여전히 유대와 사마리아 (‘서안 지구’) 영토의 추가 양보를 반대하고 있다.

오슬로 협정2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 갈등을 종식시킬 최종 평화 협정이 성사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두-나라 해법은 무의미한 주문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오슬로 협정 실패의 구실인 유대 정착촌 건설 때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이고; 두 번째는 수 백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과 그들의 자손들에 관한 소위 ‘귀환법’에 관한 것이다. 좌익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정부는 통곡의 벽과 성전 산을 포함한 예루살렘 구도시의 지배를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수 백만명의 적대적인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이스라엘로 물밀듯 들어오게 하는 것은 마치 국가적 자살 행위와 같은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꼼짝하지 않고 있으며, 아마도 이런 입장에 대해 타협을 하려는 지도자는 누구든지 암살을 당할 것이다.

더욱더 복잡한 상황은 아랍 국가들에서 요동치고 있는 내전과 동요이다. 이집트와의 평화 협정은 권력에 매달리고 있는 정부만큼 깨지기 쉬운 상황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서방이 요구했던 것처럼 골란 고원을 돌려주고 시리아와 평화 협상에 사인을 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현재 그런 협정을 지지할 수 있는 안정된 시리아 정부는 없다. 이스라엘이 아랍인들이나 서방 세계가 보장할 수도 없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위해-땅을 주는 위험한 협정에 사인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 지위에 관해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국제 사회는 그것을 보증했습니다”라고 국회에서 외무부 및 국방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아비그돌 리버만이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아무도 우리를 위해 나서지 않습니다.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옵저버 회원국으로 격상시긴 것이 겨우 일년 전 일 입니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57%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슬로 협정이 안보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이스라엘에 피해를 주었다고 믿고 있다.

현실:

1993년 오슬로 협정 이후, 양측 사람들이 더 많이 사망했다. 오슬로 협정 이후 이스라엘은 테러로 1,425명이 희생되었다. 협정 이전 20년 동안 사망한 415명과 비교되는 수치이다.

팔레스타인 측은 약 9,000명이 사망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무장 범인과 자살 폭탄 범 등 전투원들이었다. 인권 단체에서 ‘무고한 일반 시민들’이라고 묘사한 사상자들은 주로 인구 밀집 지역에서 테러범들과의 전투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했다. 오슬로 협정이 있기 전, 제 1차 팔레스타인 봉기 (1987-1993년)를 포함한 20년 동안 2,200명의 팔레스타인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5년 간 중단 되었던 평화 협정을 재기했지만, 예루살렘의 지위문제, 난민, 유대인 정착촌 문제 등 난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20년을 돌아볼 때, 돌파구를 찾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Picture - 퇴색되고 있는 영광: 클린턴 대통령이 1993년 백악관에서 라빈과 아라파트의 역사적인 악수를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