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이스라엘투데이

전쟁의 추억

나는 제 2차 세계 전쟁이 한창이던 1941년 5월에 태어났다. 당시는 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기억은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독일 중부에 있는 한 작은 도시) 퀴들린버그에 있는 루터 교회의 기독교인이 우리를 나치로부터 숨겨주었다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다음 전쟁은 6일 전쟁이었다. 나는 아내와 1964년에 이미 이스라엘로 이민한 상태였지만, 당시 우리는 독일에 사업차 머무르던 중이었다. 나는 1967년 6월 5일에 전쟁 발발을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 일을 마치고 이스라엘로 돌아올 수 있었을 때에는 이미 6일 간 진행된 이 전쟁이 종결된 상태였다. 전쟁 결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예루살렘이 다시 한 번 유대 백성과 유대 국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 다음은 1973년 전쟁이었다. 이 때는 헨리 키신저가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이스라엘 총리인 골다 메이어가 바티칸에서 교황 바오로 6세를 만났으며, 이스라엘 건국자 다비드 벤 구리온이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해였다.

1973년 10월 6일은 유대인들이 25시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기도만 드리는 대속죄일 욤키푸르였는데,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 양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 이 날은 길에 차도 다니지 않으며, 공항조차도 문을 닫는 날이었다. 이 절기 동안은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도 중단되기 때문에 뉴스를 접할 수도 없었다. 사이렌이 울려 퍼졌을 때까지 아무도 라디오를 켜지도 않았던 것이다. 회당에 있었던 군인들은 그 자리에서 소집을 당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최 전선으로 보내졌다. 이것은 세계 역사상 가장 악날한 전쟁이었으며, 당시 나도 종군 기자로 전선 한 복판에 있었다! 결혼을 한 두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세 번째 아이가 곧 출산할 예정이었다.

나는 사43:1-2의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전투로 나갔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 주신 말씀이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리고 나는 전쟁 동안 종종 불 가운데로 지나곤 했다.

맨 먼저 나는 수에즈 운하에 있는 이집트 전선으로 가야 했다. 이곳은 이집트의 기습 공격으로 바르-레브 전선에 있던 우리 부대들이 파괴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의 서부 제방에 이르는데 성공했고, 그레이트 비터 호수와 홍해까지 진격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끔찍한 현장과 부패한 시신 냄새가 연상되곤 한다. 이집트인들의 시신들이 비터 호수에 떠 다녔다. 그들은 홍해에 있던 상어들을 끌어들였고, 이 상어들은 호수에서 부상 당한 채 생존을 위해 수영하던 사람들을 공격했다. 나는 종종 열기 때문에 떠 오른 시신들의 눈을 새들이 쪼고 있는 참호에 숨어야 했다. .

전세가 기울기 시작하자 수 많은 이집트 군인들이 떼 지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투항하기 시작했다. 나는 훈장을 주렁주렁 단 이집트 사람이 내 팔을 잡고 크게 울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한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나는 그를 위로하고 축복했었다.

다음호에 계속…

Picture - 전투에 지친 병사: 이스라엘 군인이 시나이 반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