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USALEM COLUMN
이스라엘투데이

토라 안에 나를 찾아서 (1)

뉴욕대 켄 베인(Ken Bain) 교수는 그의 책 “최고의 대학생들은 무엇을 하는가?”(What the Best College Students Do?)에서 탁월한 교수법과 탁월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특징들을 잘 요약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첫째,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알려주고 동기화를 잘 시키는 교수와 공부의 동기화가 잘 되어 있는 학생이 효과적인 공부로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수업을 시작할 때 오늘 배워야 할 공부의 내용에 대해 먼저 왜 이 공부의 목적을 인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어진 모든 일들과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공부의 근본적인 목적과 동기를 이해하는 것은 그 일과 공부의 결과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둘째, 켄 베인 교수에 따르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비판적이고 통합적인 사고를 하도록 잘 유도하는 교수, 그리고 비판적이고 통합적인 사고 속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해 나갈 수 있는 준비와 용기를 가진 학생이 가장 효과적인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우리의 교육 현실을 생각해 보면, 근본적으로 사고가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사고의 경직됨은 학문적인 영역에서 종교적인 가치와 신앙적인 표현을 제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부에 있어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와 생각을 표현하는 자세를 훈련하는 것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창조적인 사고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삶과 신앙에도 이러한 원리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물론 완벽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지만, 우선 순위에 있어서 이런 정체성을 바르게 정립하고 이해하는 일을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인간의 정체성과 그 삶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성경이다.

토라와 선지서와 성문서로 이루어져 있는 “타나크”(Tanakh), 그 중에서도 토라가 말하고 있는 율법은 가장 우선적으로 알고 이해해야 할 책이다. 왜냐하면, 바로 인간은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잘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토라의 율법의 핵심은 제사에 집중되어 있고, 그 제사의 핵심에는 피 흘림을 통해 죄 사함을 받는 일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교육에 있어서 왜 중요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이 죄인인줄 모르는 인간들의 학문적인 교만함이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폐해를 가져 왔는지에 대해 반성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죄인인 인간은 유한하고 속죄가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은 홀로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라고 잠언에서 끊임없이 말해주고 있다. 바로 모든 교육의 기초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호에서 탈무드의 미쉬나와 게마라 본문 연구를 잠시 멈추고 이렇게 인간의 본질과 성경적인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탈무드라는 공부를 하기에 앞서서 먼저 그 공부의 정의와 목적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왜 이 땅을 살아가는지를 깊이 이해하는 일은 삶에 있어서 가장 우선되고 중요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탈무드는 히브리어로 ‘공부’라는 뜻이다. 탈무드는 오랜 세월 동안 유대인들의 삶에 축적되어 온 신앙의 경험과 그 신앙의 고백들이 농축되어 있는 삶의 지혜서이다. 그래서 공부라는 것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그 정체성을 배우는 것이고, 또한 인생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있는 우리의 삶의 작은 자리에서부터 넓은 우주 세계까지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 공부인 것이다.

나아가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계를 신앙으로 고백하고, 시와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함으로써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은 공부의 높은 수준의 경지로 올라갈 때 이루어 질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필자가 이스라엘에서 누렸던 아름답고, 소중한 삶의 공부와 그 귀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신앙의 고백을 시편 23편의 말씀과 함께 “토라 안에서 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필자가 가장 애호하는 시이다. 이 시에는 농축되어 있는 시인의 삶의 고뇌 속에 깊은 묵상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시인은 자신은 양이요,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목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과 인생들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한 구절은 성경에 많이 있다. 겔 34장 31절,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한 목자와 양과의 관계는 참으로 적절하다고 본다. 이런 표현은 목동이었던 다윗이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해서 나온 표현인 것 같다. 사무엘 상 17장 34-36절에서 다윗은 골리앗과 싸우기 전에 사울 왕에게 자신이 양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고 사자와 곰과 싸웠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양들을 지키는 목자의 삶을 살면서 그 목자와 같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했을 것이다. 아직도 이스라엘에 베두인들이 사는 지역에 가면, 이런 목자들이 양을 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참으로 오직 목자만을 의지하여 근시안인 양들이 먹을 꼴과 마실 물을 통해 거친 광야를 지나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철저히 의지하고, 철저히 책임지는 관계가 바로 목자와 양의 관계를임을 잘 보여준다. 이런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잘 이해했던 다윗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하면서, 그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우리는 이 시편 23편 1절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이해하는 것이 신앙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첫 단추가 잘 끼워져 있지 않으면, 모든 삶에서, 공부와 일에서도 그 분명한 목적과 동기가 분명하지 않기에, 결국 열심히 하다가도 목적을 잃어버리게 되고, 쉽게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와 자신의 정체성을 잘 정립하고,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따라가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새삼 느끼게 된다.

다시 시편을 보자. 다윗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정하고, 무슨 특별한 목적을 마음에 두고 평생을 살았는가? 마지막 6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에 잘 묘사되고 있다. 그는 평생에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집에 사는 간절한 바람과 소원이 있었다. 바로 성전 건축이었다. 결국 그의 평생에 직접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했지만, 솔로몬을 통해 제 1차 성전을 짓게 된다.

그러나, 그 1차 성전도, 2차 성전도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통해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으셨기에, 그 시대에 다윗을 택하고, 그런 소원을 다윗에게 주셨다고 본다. 무엇보다, 다윗은 그 성전에서 행해져야 할 속죄 제사를 통해 인간의 죄악의 문제 해결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성전 건축의 본질적인 목적임을 잘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대적인 사명을 분명히 알았던 사람이다.

다윗을 부르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땅에 보내시고, 바로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의 목적을 알기를 원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로 당신을 향한 시대적인 사명은 과연 무엇인가?

허정문 목사
고신신대원 졸업, 히브리대학교 교육학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