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USALEM COLUMN
이스라엘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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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가난한 자가 없어야 한다고 가르쳤고, 초대교회는 초창기에 가난 문제를 다루었다. 모세는 일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의 일부라 가르쳤고, 신약에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살후 3:10)고 했다.

이것은 지난 2세기 이상 복음이 양산해 온 결과와 상당히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아프리카가 우리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듯하다. 케냐의 조지 키노티 박사는 그의 저서 (Hope For Africa-And What The Christian Can Do)에서 중요한 관찰을 했다.

아프리카 사람 3명 중 1명이 굶주림에 시달린다. 1987년까지 지방에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55-60%는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았고 빈곤율도 급증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40개국의 2/3가 아프리카에 있고, 가장 가난한 10개국 중 8개도 그러하다. 전문가들은 기독교가 다른 어떤 대륙보다 아프리카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더 급속히 가난해지고, 사회의 도덕적, 사회적 구조도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기독교는 아프리카 국가에서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요즘 신자들이 재정을 성경 원칙이 아닌 주술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내가 이만큼 주면, 이만큼 돌려받겠지! 하나님이 하늘에서 공급하실 거야. 나는 내 재정의 기적을 믿어.”

그러나 성경의 전반적인 원칙과 분리되었을 때, 성경에 기반을 둔 생각이 아닌 신비주의가 되고 만다. 신명기에서 경제의 열쇠가 되는 모세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주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에게 필요한 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삼가 너는 마음에 악한 생각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며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너는 반드시 그에게 줄 것이요, 줄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하는 모든 일과 네 손이 닿는 모든 일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5:1-10).

하나님은 이 말씀으로 모든 나라에 복 주기 원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창 12:3, 18:18, 22:18, 26:4, 28:14 참고). 경제적 축복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난 그 순간부터 그들을 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였다. 신명기 15장을 보면, 하나님은 경제적 발전과 함께 각 사람과 나라 모두 책임감을 갖도록 광야에 있는 그들을 준비시키신다.

첫째 원칙은 개인 빚에 반드시 한계를 두어야 한다.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 성경을 연구할 때의 기본 원칙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의 많은 구절이 돈을 꾸고 갚는 방법을 다뤘는데, 단 한 구절만을 택하여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하면 다른 구절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므로 이렇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로마서 13장 8절은 말 그대로 ‘꾸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채무를 불이행하지 말고, 제때에 돈을 갚고 계약을 지키라는 뜻이다.

1-3절 말씀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빚 갚는 제도를 가르친다. 어느 나라가 7년 주기를 빚 갚는 제도에 적용했듯이 이 제도를 똑같이 하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러한 적용의 목적에서 원칙을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서 원칙은 빚은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람들에게 평생 빚을 지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에서는 누구라도 이 제도를 따라 했다. 개인 빚은 모두 같은 해에 탕감되었다. 한 주기의 첫 해에 무언가를 빌렸다면, 이를 7년 안에 갚아야 한다. 셋째 해에 빌렸다면, 이를 4년 안에 갚아야 했다. 채권자와 채무자가 합의할 때는 이 기간 안에 다른 변상 계획을 세워야 했다.

성경에 나오는 첫 다섯 권의 말씀에서 재정을 살펴보면, 대출은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필수 제도이다. 뀌어주는 것은 사업장의 소규모 대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대출의 목적은 빈곤자를 필요 상황에서 벗어나 스스로 일어서게 하기 위해서였다. 즉, 경제적 자립이 그 목적이었다. 유대인은 수세대에 거쳐 이러한 원칙을 계속 고수했고, 그 결과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 상관없이 유대인은 있는 그곳에서 돈을 번다. 가난한 유대인이 하나도 없다거나 모든 유대인이 부자라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그들이 빨리 자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뀌어주기의 목적을 이해한, 한 유대인 가정이 이주하여 자립하면, 그들은 다른 가정이 자립하도록 돈을 뀌어준다. 모세가 가르쳤던 대로, 뀌어주는 일은 재정적 자립을 돕고, 지역사회에서 생산적인 일의 일부를 담당한다. 왜냐하면 뀌어주기는 지역사회의 책임이고, 돈을 버는 한 가지 수단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15장 3절을 보자. “이방인에게는 네가 독촉하려니와 네 형제에게 뀌어준 것은 네 손에서 면제하라.” 얼핏 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처럼 이방인을 대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구절에 나타난 분명한 뜻이, 다른 많은 구절과 맞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뜻이 아닌 것이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이 열방을 축복하기 원하신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절대 논쟁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방인의 빚은 탕감해 주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 이 의문에 가장 적절한 답은 유대인들은 여덟 번째 해에 안식년을 보내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할 수 없었고, 동물과 땅도 이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돈을 갚는 게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방인은 이러한 유대인의 법을 따라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계속 일해서 갚을 수 있었다. 사실 이방인 이민자에게는 경제적으로 설 수 있는 ‘횡재’의 해이기도 했다.

두 번째 원칙은 가난한 자를 없게 해야 한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 15:4-5).

이 구절에서 찾을 수 있는 두 번째 원칙은 4절에 나온 내용이다. 이스라엘은 가난을 없애는 데 국가적 차원에서 헌신해야 했다. 재정의 축복은 온 나라가 재정적 책임을 지는 데서 온다. 말씀의 어떤 구절에서도 개인이나 국가의 부를 제한하지 않는다. ‘재물이 당신의 일생을 사로잡게 해서는 안 된다. 재물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주의하지 않으면 재물이 그만큼 소중한 것을 네 마음에서 빼앗아간다’라는 가르침이 있다. 그러나 말씀은 재정적인 주도권을 잡고 재물로 지역사회를 축복하는 일을 권장한다. 성경은 지역사회의 경제 제도가 가난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스라엘에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가 있는 것은 나라 전체의 수치였다.

백만장자와 억만장자가 무수히 생겨난다. 그러나 재정적 안정은 부자의 증가뿐 아니라 경제 수치 저변까지 살펴봐야 한다. 가난한 자가 증가하는가? 미국에는 억만장자가 많지만, 동시에 빈곤선 하에 사는 사람도 많다. 문제는 부유함이 아니라 돈을 버는 데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성경의 경제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분배하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가 아니다. 하지만 가난한 자와 권리를 박탈당한 자를 무시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성경은 경제라는 사다리 밑바닥에 있는 자에게 삶에 이바지할 기회를 주어, 경제를 안정, 성장하게 하기를 권면한다.

또 성경은 다른 어떤 영역보다 가난한 자를 위한 사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농부는 자신의 밭 일부를 떼어, 가난한 자들이 이삭을 주울 수 있게 했다. 경영주는 좀 더 살림이 어려운 자에게 일을 배당했다. 정부가 담당해야 할 책임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는 궁핍한 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원칙은 나라의 부채를 없게 해야 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통치할지라도 너는 통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신 15:6).

이스라엘은 꾸지 않을 거라 하셨다. 그들은 나라에 빚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꾸지 않는 정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자. 첫째로 자신이 가진 범위 안에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소비는 필요한 균형을 맞추어야 했다. 둘째로 스스로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점을 깨닫고, 무엇을 하고, 만들고, 개발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 공동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해야 한다.

20세기에 인도 총리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는 ‘국산품 애용’이라는 국가 정책을 장려했다. 취지는 한동안 수입을 하지 않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었다. 만일 인도에서 자동차, 세탁기, 비디오, TV 등이 필요하다면, 이것을 생산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물론 처음 만든 자동차, 비디오 등이 썩 잘 작동한 건 아니었지만, 계속 발전했다. 서서히 무역 불균형이 줄어들고 고용이 늘었으며, 스스로 생산해서 공급하는 능력에 국가적 자신감이 붙었다. 의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과 나라에 재능을 주셔서, 제자화의 일부로 그 재능이 빛을 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신다.

신명기 15장 7-10절에서 하나님은 인류가 타락했으며 항상 옳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신다. 심지어 그분이 사랑하는 유대인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셨다. 기억하라. 이 말씀이 기록되었을 때 그들은 3백 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하고 나서 광야에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셨기 때문에, 재정으로 축복하시며 그들 자신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그들이 받은 축복은 사회에 더 큰 유익을 끼칠 책임을 포함한 것이었다.

8절 “필요한 대로”라는 단어에 주목하라. 요즘 어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 자신에게 요구하면, 그가 원하는 대로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성경에 바탕을 둔 생각이 아니다. 무조건적인 원조는 사람을 더 의존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성경 원칙에 반한다. “뀌어주라”는 중요한 단어도 주목하여 보라. 뀌어주는 것은 기부가 아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뀌어줄 때는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꾸는 자의 삶에 깊이 개입하여 그의 필요를 판단하고, 이를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본다.

한 그리스도인 은행장은 성경적 경제에 대한 말씀을 연구하면서 미국 은행은 잘못된 사람에게 돈을 대출해 주고 오히려 적합한 사람에게는 대출해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국 은행은 부자나 이미 빚진 사람에게 대출해 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민자, 여성, 무직자, 사업을 시작하려는데 자본이 없고 빚도 없는 사람에게는 거의 대출해 주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그 은행장은 지역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훌륭한 생각으로 개인은행을 시작해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었다. 이 은행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고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 성경을 바탕으로 한 경제활동이다.

그렇다 성경적 재정관 ,경제관을 분명하게 갖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날 확장을 위해 각 영역에 유기적인 지원을 위한 원동력으로 작 용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고 우리는 청지기이기 때문에 옳게 많이 벌어 바르게 많이 사용하자. 주님 영광을 위해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모두 드리는 G12MVP경제역역의 리더가 되길 바란다.

장헌일 박사/명지대학교 교수
국제정경리더십연구원 원장
국가조찬기도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