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USALEM COLUMN
이스라엘투데이

가정 리더십

가정 리더십

커뮤니케이션과 교육 영역처럼, 가정은 정부 및 교회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가정은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보통 네 살 때까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의 80%를 형성한다고 한다. 우리 세계관은 대부분 취학 전에 형성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태어난 4년 안에, 부모와 가정환경은 현실을 정의해 준다.

가정을 제외한 것, 즉 영화, TV, 음악, 학교, 친구에 관심을 두는 나이가 되면, 하나님은 사회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정에 직접적인 관심을 두신다. 성경을 훑어보면, 가정은 성스러운 영역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정은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인 사랑을 담당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영역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첫째 가정은 가치의 가장 우선된 모판이다.

가정을 연구하다 놀란 점은 성경이 부모와 자녀가 함께하는 시간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강조했다는 점이다. 성경을 보면 이런 말씀을 여러 차례 읽게 될 것이다.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든지”(신6:7), “앉아 있을 때에든지”(신11:19),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6:9). 이 말씀은 부모가 자녀에게 삶의 모든 영역에 관한 하나님의 생각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지침이다. 또한 일상에서 살아가는 데 본이 되는 내용이다. 말씀으로 훈육하는 일은 부모의 책임과 권한이다. 하지만 정부나 교회가 자녀를 제자 삼는 일에 일차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말은 없다.

학교, 교회가 자녀에게 훌륭한 가치관을 심어 주려는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부모에게 먼저 막중한 책임을 부여하신다.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자녀를 지키려면, 부모가 먼저 아이들이 알고 이해해야 하는 것을 가르치고 본이 되어야 한다. 세상은 죄로 물들고 파괴적이니 자녀에게 악을 이기고 선을 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렇게 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논의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부모의 삶에서 존경할만한 점을 보지 못한 자녀가 과연 부모의 가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녀는 학교에 갈 때까지, 정직, 정의, 일관성, 용기와 같은 성품의 중요성을 부모가 사는 방식으로 알게 된다. 물론 학교, 교사, 목사, 주일학교 교사, 친구, 문화가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정은 여전히 자녀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가정은 자녀가 삶에 드러나는 모든 영향력을 해석하는 실제 잣대다.

둘째, 가정은 가장 우선된 도덕성의 모판이다.

하나님은 ‘간음’이란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정의하고 부도덕으로 인한 파멸을 강조하시는데, 특히 가정을 강조하신다. 그렇다고 가정 밖에서 성관계 하는 것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성적 부도덕이 많은 희생자를 낳는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성관계로 맺어진 두 사람과 함께 주위의 가족이 희생된다.

자녀가 가정에서 도덕성에 대한 본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세상의 성적 공격에 방어하도록 그들을 양육할 수 있겠는가? 가정의 수많은 비밀스런 내용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반대될 때, 어떻게 당당하고 확신에 찬 자녀를 기를 수 있겠는가? 왜 하나님이 당연하게 여기시는 것에 충격을 받는가?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고 그들의 몸을 존귀하게 여기고, 성관계를 가정 내의 신실한 결혼 서약 안에서 해야 하는 거룩하고 신성한 행위라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가르치겠는가?

자녀가 ‘때가 되면’ 성을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정부와 학교 과정에서 올바른 성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공격하기 전에, 하나님이 부모에게 본을 보이고 자녀를 가르치는 책임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부모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누가 해야 하는지를 잘 아신다.

셋째, 가정은 가장 우선된 공급의 모판이다.

구약과 신약에서 가정은 가난과 경제적 파멸을 막는 첫 방어선이다. ‘궁핍함’의 정의와 궁핍한 자를 누가 먹여야 하는지는 교회의 초기 논란의 하나였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에서 가난한 자에게 가족이 있으면, 가족이 그를 돌봐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혹시 그들에게 직업이나 가족이 없다면, 교회가 그들을 도와야 한다. 바리새인은 모든 것에 십일조를 내는 관습이 있었다. 심지어 부엌에 있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서도 십일조를 냈다. 예수님은 박하의 십일조는 하면서 자신의 부모에게 재정적 도움을 드리지 않는 바리새인을 꾸짖으셨다(딤전 5:8; 마 23:23).

룻기에 과부 나오미와 며느리 룻 이야기가 나온다. 이방인으로 자식 없이 타국에서 의지할 데 없던 그들은 이스라엘 본가가 있는 마을로 돌아간다. 거기서 가장 가까운 친척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고 도움을 받는데, ‘기업 무를 자’의 권리가 있는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고(룻 4장) 룻과 나오미를 자기 집에 데려다가 돌본다. ‘기업 무를 자’(영어 성경에서는 ‘친척을 구하는 자’라는 표현)라는 개념은 얼마나 대단한가! 하나님은 재정적 필요가 있는 사람의 첫 번째 책임을 가정에 두셨지, 교회나 공동체, 또는 정부에 두지 않으셨다.오늘날 가족은 지역사회와 개인을 위해 가난한 자와 경제적 파산 지경에 처한 자를 도와야 한다.

넷째, 가정은 가장 우선된 정의의 모판이다.

신명기 21장 15-21절을 원칙이 아닌 적용으로 읽는다면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모세가 이 말씀을 기록한 시대는 일부다처제였고 사람들은 폭력적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씀은 ‘뺨 한 대에는 목숨’(창 4:23-24 )이라는 복수 제도를 완화하려는 시도에서 나왔다. 하나님은 분명히 일부일처제를 최고로 여기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 당시는 일부다처제였고, 그 덕분에 불륜 관계는 더 적었지만 여전히 정의는 필요했다. 이 말씀과 비슷한 법률은 “남자나 여자나 자녀나 상관없이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권리가 있다”라는 것과 “가족 구성원은 그러한 권리를 존중하고 행사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에스더서에는 가족의 책임을 다룬 훌륭한 예화가 나온다. 에스더는 고아이자 난민이다.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는 그를 딸처럼 기른다. 그는 에스더가 바벨론의 왕후가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가족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정의에 열정을 품은 사람이었다. 타국에 있는 유대인을 힘으로 누르려는 이방 나라의 왕이 암살당할 위험에 처했을 때, 모르드개는 그 음모를 폭로하고 왕의 목숨을 구했다(에 2:19).

그 이후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왕후 자리를 이용해, 또 다른 정치 지도자 하만이 품은 종족 말살의 음모에서 유대인을 구한다. 모르드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살았고, 그의 가족, 고국, 백성을 돌보는 본을 보였다. 그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 정의가 있음을 알았다. 가족 에스더에게 본이 되어 나라를 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을 이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야고보는 이 말을 최고의 법(약 2:8 )이라 부르며, 차별을 죄라고 했다. 자녀가 가정에서 차별 대우를 받는다면 어떻겠는가?

우리는 잃어버린 영혼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다른 종족 집단이나 ‘어떤 유형의’ 죄인은 참지 못한다. 정부를 늘 비판하지만, 투표조차 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정의의 본을 보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정의를 믿고 세상의 빛이 되는 자녀를 양육할 수 있겠는가? 가정에서 지역사회에 관심을 기울이는 본을 보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녀가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겠는가? 가정은 개인과 지역사회 정의를 위한 하나님의 첫 번째 방어선이다.

다섯째, 가정은 가장 우선된 사랑의 모판이다.

하나님은 삶과 관련된 모든 생각을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요약하신다. 그분이 정의하신 사랑은 공의, 공급, 일관성, 진리가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 기능하는 정부의 실제 권위는 백성이다. 과학의 권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변함없는 자연법칙이다. 교회의 권위는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다루는 것이다. 가정에서 권위는 사랑으로 세워진다. 그 사랑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성경 전체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조직에는 구조가 있다. 부모는 자녀가 집을 떠날 때까지 부모에게 권위가 있고, 남편은 아내에게 권위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싫어한다. 이 개념이 오용되어 하나님이 절대 용납하실 수 없는 의미로 변질됐기 때문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사람이 자신의 주장에 더 힘을 실으려고 이 말씀을 남용했다. (엡 5:22-6:4).

가정의 구조와 권위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 정부는 ‘세상적’인 가정이 그렇게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강조하는 바는 분명하다. 그 모든 책임이 가정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며 우리 모두 가정사역자로서 가정 현장에 파송된 선교사로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길 원한다.

장헌일 박사/명지대학교 교수
국제정경리더십연구원 원장
국가조찬기도회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