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은 신년(새해)에 왜 나팔을 불까?
‘절기 장’으로 유명한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7개의 절기 가운데 ‘신년’과 ‘대속죄일’은 신약성경에 직접적인 언급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신년은 유월절이나 초막절, 그리고 오순절(칠칠절)만큼 그다지 친숙함과 중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신년’(新年)은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무척 중요한 절기였다.
전 세계가 한 해의 시작을 태양력에 기초한 국제달력에 맞추어 1월 1일로 지킨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중국 문화권의 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태음력에 기초해 음력 새해를 지킨다. 태음력의 새해인 구정을 대대로 지켜온 한국도, 국제화 시대에 맞추어 신정을 강조했다가 결국 국민 정서가 따라주지 않자 다시 구정으로 돌아온 바 있다.유대인들은 성서시대부터 자체적인 태음력에 기초한 신년을 지켜왔다. 현대 이스라엘에서도 신년의 중요성은 유월절이나 초막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나팔을 불며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유대인들의 신년은 ‘나팔절’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에 직간접적으로 등장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레23:24)
월삭과 나팔절
‘유대력’(Jewish Calendar)으로 불리는 유대인들의 달력은 ‘달’(moon)을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이다. 전통적으로 달을 기준으로 ‘한 달’을 계산했던 우리나라에서도 초하루(1일), 보름(15일), 그믐(30일)과 같은 말들이 종종 사용된다.
매달의 시작을 알리는 ‘초하루’는 태음력을 쓰는 문화에서 무척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성경에 ‘월삭’(New moon)으로 등장하는 초하루는 레위기 23장에 나오는 7대 절기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중요도가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는 신구약 성경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월삭’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작정한 사실을 다윗이 최종적으로 확인한 때도 월삭의 절기였다. 다윗은 월삭의 제사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는데 집안의 매년제를 핑계로 빠졌다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속마음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그의 말이 좋다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지니”(레20:5-7)
성전 제사의 타락상을 비판한 이사야 선지자가 언급한 절기는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유월절이나 초막절이 아니라 매달 찾아오는 월삭이었다.“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3)
신약성경에도 절기와 함께 월삭이 등장하고 있다.“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貶論)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골2:16,17)
1년 12달 동안 12번의 월삭(초하루)이 있지만 특별히 7번째 달인 티슈레이 월(10월경)의 월삭은 ‘나팔절’로 불리는 특별한 절기였다. 7번째 날인 샤밧(안식일)처럼 7번째 달인 나팔절(신년)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의미하는 숫자인 ‘7’을 포함하는 공통점이 있다.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 월삭은 천문학적인 계산이 아니라 육안적 관찰에 의해 결정되었다. ‘Y셔츠의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모든게 어그러지듯이’, 정확한 월삭의 결정은 다른 모든 절기를 지키는 데 기초가 되었다. 육안적 관찰에 의존한 월삭 계산법으로 인해 달의 첫 출현을 본 진실된 증인들의 보고가 무척 중요했다. 2명의 증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해 달의 출현을 증거함으로써 월삭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7번째 달의 월삭인 신년에는 그 중요성으로 인해 1명이 더 추가되어 3명의 증인이 필요했다.
진실된 증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고자 증인들을 위한 많은 특혜들이 베풀어졌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도 증인들은 안식일 날 움직일 수 있는 거리의 법적인 제한을 받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 증인이 도착하면 성전의 특별한 방에서 산헤드린 대표들이 주관하는 특별 연회가 벌어졌다. 성서시대의 사회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의적 공동체였기 때문에 이 정도의 특급 대우라면 진실된 월삭의 보고를 위한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이다.
신년에는 왜 나팔을 불까?
일곱째 달 월삭(초하루)인 신년은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 즉 ‘나팔절’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레23:24)
신년에 부는 나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트럼펫이나 트럼본이 아니다. 그럼 색스폰인가? 물론 아니다. 이것은 히브리어로 ‘쇼파르’로 불리는 수양의 뿔로 만든 양각나팔이다. 그러면 왜 신년에 양각나팔을 부는 것일까? 유대인들의 성서주석인 미드라쉬는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독자 이삭을 바치려고 한 날이 신년이라고 말한다. 번제로 바쳐져야 할 이삭을 대신해서 죽은 수양을 기억하도록 신년에 수양의 뿔로 만든 양각나팔을 분다는 것이 미드라쉬의 해석이다.
처음에 수양의 뿔로 만든 양각나팔은 예수님 당시의 2차 성전시대에는 소(또는 송아지)의 뿔을 제외한 모든 동물의 뼈를 사용해서 만들 수 있었다. 소의 뿔을 제외하는 것은 하나님이 금송아지 사건을 기억하실까봐 염려해서라고 한다.“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출32:4)
나팔 불기는 40년간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몇 가지의 특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첫째, 진의 이동을 알리는 출발 신호였다.“은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민10:2)
둘째,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선전포고였다.“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고전14:8)
셋째, 3대 절기와 월삭, 안식일, 신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 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민10:10)
나팔 불기의 주된 목적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다’라는 사실을 기억하는데 있다. 그 분 앞에 기억되고 구원받았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건 나팔 불기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신약성경에서도 이어진다.
말일의 때에는 나팔 소리와 함께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모두 일어서 왕 되신 여호와 앞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24:31)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신년과 생명책
탈무드에는 신년에 3개의 책이 펼쳐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행실이 착한 의인을 위한 ‘생명책’, 행실이 악한 악인을 위한 ‘죽음의 책’, 그리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지대에 속한 자를 위한 ‘중간책’이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있는 회색지대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신년과 대속죄일 사이의 10일 동안이 무척 중요한 시간이다. 신년과 대속죄일 사이의 10일은 히브리어로 ‘야밈 노라임’, 즉 ‘경외의 날’로 불리는데, 이 때는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마지막 유예 기간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회개하면서 기도한다.생명책에 대한 유대인들의 이런 사고는 시편 기자와 모세의 기도 속에도 잘 녹아있다.
“저희를 생명책(生命冊)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시69:28)“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32:32)
류모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