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USALEM COLUMN
이스라엘투데이

유월절과 관련된 숨은 본문들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역사적인 이정표(milestone)가 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인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최고 명절로서 신구약 성경의 본문 속에 자주 드러난다. 때로는 유월절과 관련된 언급이 간접적이라 쉽게 놓치기 때문에 ‘숨은 본문들’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의 성서주석인 미드라쉬는 이방인 성도들이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또 다른 유월절 관련 본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해석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경이 탄생한 본 고장의 터주대감들의 해석이라 충분히 참고할만하다고 생각되어 이 장에서 함께 소개하려고 한다.

히스기야가 유월절을 지킴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대하30:1)

이스라엘이 남북의 두 개의 왕조로 분열되면서 남유다에 등장한 몇 명의 선한 왕들이 있다. 아사, 여호사밧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왕들의 계보가 있지만, 북이스라엘은 왕조의 창시자인 여로보암을 좇아 우상숭배의 길로 가는 바람에 열왕기서의 기록에 따르면 선한 왕을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남유다의 선한 왕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존재를 들라고 하면 히스기야와 요시야일 것이다.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는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역사에서 가장 격변의 시절이었다. 중근동 최고의 제국이던 앗시리아가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노골화하면서 고만고만한 주변의 강국들이 지도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에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했는데(주전722년), 결국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보호막이 사라지고 거대한 제국인 앗시리아와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국가적 위기의 때에 히스기야 왕의 믿음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까지 아우르며 전 이스라엘 땅에 대대적인 유월절 행사를 공표했다.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하나의 민족을 빚어낸 출애굽 역사를 기념하는 유월절을 패망한 북이스라엘의 난민들까지 흡수해서 지킴으로써 분열된 다윗 왕조의 부흥을 꿈꾸었을 것이다.

요시야가 유월절을 지킴

“요시야가 예루살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켜 정월 십사일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대하35:1)

남유다에서 마지막 부흥의 불꽃을 피운 요시야 왕은 앗시리아 제국의 절정기에 왕이 된 히스기야 왕과 달리 앗시리아 제국의 패망기에 유다의 왕으로 통치했다. 요시야는 앗시리아 제국의 봉신으로 만족했던 므낫세, 아몬과 같은 선왕들과는 달리, 분명 믿음과 패기면에서 출중한 인물이었다. 천우신조로 요시야의 통치기(주전639-609년)에 앗시리아 제국은 멸망의 징조들이 나타나면서 급기야는 패망하게 된다(주전612년).

요시야는 앗시리아의 쇠퇴기를 이용해 북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인 납달리 땅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유월절 행사를 계획했다. 앗시리아의 쇠퇴기로 인해 앗시리아의 속주로 병합된 북이스라엘도 어느 정도 자치를 이룬 듯하다. 요시야는 떨어져 나간 북이스라엘을 다윗 왕조의 이름으로 복속시키고 잠시나마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유월절 행사를 주관했던 것 같다.

수심이 가득한 느헤미야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 니산 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愁色)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느2:1,2)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있던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수심을 드러내는 불충을 저질렀다. 사실 개인적인 슬픔이 있다고 해서 왕 앞에서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있는 것은 쉽게 용납될 수 있는게 아니지만, 느헤미야는 왕궁에서 아닥사스다 왕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던 것 같다. 왕 앞에 선 느헤미야도 주체할 수 없었던 수심은 바로 유월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유월절이 있는 ‘니산 월’에도 고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이역만리에 있는 자신과, 또한 형제인 하나니로부터 들은 예루살렘의 소식으로 인해 그는 짓누르는 수심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느1:2,3)

스룹바벨 성전의 봉헌 예식

“다리오 왕 육 년 아달 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스6:15)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정월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케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스6:19,20)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의 기한이 차자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을 통해 잡혀온 유다 포로들이 자유롭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공표했다. 이 때 돌아온 포로들은 지도자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의 리더십 아래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는데, 공사를 완공한 때가 페르시아 3번째 왕인 다리오 통치 6년의 아달 월 삼일이었다(주전515년). 아달 월(3월경)은 유월절이 있는 니산 월의 바로 전달이다.

황소 100마리, 수양 200마리, 어린 양 400마리를 성전 봉헌식 제사에서 드리고, 곧 이어 시작된 유월절 절기를 함께 축하했다. 애굽에서의 해방을 즐거워하는 유월절 절기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은 성전을 봉헌한 기쁨과 함께 유월절을 기념하며 감회가 새로왔을 것이다.

감옥에 갇힌 베드로가 풀려남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행12:3,4)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탄생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면서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수장인 베드로를 위해 전 교인이 금식하며 합심기도했을 상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던 이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직접 감옥에서 구원하신 것이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행12:7)

전혀 예상치 못한 기도 응답으로 인해 이들은 베드로를 보고도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유령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행12:15)

베드로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구원받은 날은 다름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유월절이었다. 시의적절한 때에 일어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앞에 이들은 상당한 쇼크를 받았을 것이다.

류모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