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USALEM COLUMN
이스라엘투데이

탈무드의 요람, 예쉬바의 자취를 따라서

오늘날, 유대교의 역사에 있어 리투아니안 예쉬바(Lithuanian yeshiva)는 종교적, 교육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대교의 교육적인 차원에서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리투아니안 예쉬바에 대한 연구가 많은 현대 유대학자들의 다른 주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이 분야에 대해 박사과정에서 깊이 있게 다룬 학자들이 손에 꼽을 정도라는 것이 필자로서는 의아하게 여겨진다.

히브리 대학에 유대인 역사(Jewish History)학부의 스템퍼 교수(Prof. Stampfer)가 이 리투아니안 예쉬바의 역사에 관한 논문을 통해 히브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히브리 대학의 역사는 유대인 교육(Jewish Education)의 역사와 함께 시작한다.

히브리 대학에는 깊은 전통을 가진 교육학부(School of Education), 유대인 교육을 위한 멜튼 센터(The Melton Center for Jewish Education)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정적으로 분리되어 있지만, 유대학(Judaic studies)과 유대인 역사(Jewish History), 탈무드(Talmud), 현대 유대인(Contemporary Jewry) 등 다양한 학과들과 연계되어 교수진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이스라엘을 비롯한 흩어진 디아스포라의 유대인 교육(Jewish Education)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예쉬바 대학과 히브리 유니온 대학을 비롯한 유대학을 연구하는 많은 대학들과 다양한 종파의 유대인 학교들이 있어, 유대학과 유대인 교육에 관련된 연구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리투아니안 예쉬바의 정신적, 학문적인 전통을 순수하게 이어오는 예쉬바가 드물고, 그 연구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투아니안 예쉬바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들을 잘 찾고 정리하여, 현대 유대교와 예쉬바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그 가치들을 평가하는 작업은 현대 유대인 교육의 발전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육철학적, 교육학적인 관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귀납적인 방법으로 예쉬바의 역사적인 발전 과정에 대해 살펴보되,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현재와 과거의 예쉬바를 비교 분석하면서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그 예쉬바와 관련된 중요한 이슈들을 다루고, 특별히 그 예쉬바 발전의 절정을 이루었던 리투아니안 예쉬바에 대한 역사와 그 커리큘럼들의 특징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호에서 제 2차 성전시대의 예쉬바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제 2차 성전이 예수님의 예언대로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된 후 유대교의 큰 변화로서 성전에서의 희생제사를 대신한 두 가지 중요한 제도가 설립되었다.

첫째는 희생제사를 대신하여 기도의 회복을 위해 회당이 설립되었고, 둘째, 예쉬바를 통한 토라와 탈무드 공부의 집중을 위한 예쉬바가 설립되었다. 이 예쉬바는 그 역할에 있어서 회당 (synagogue)과 구별되었음을 보게 된다.

회당은 기본적으로 토라 공부를 할 수 있는 장소였지만, 본래적으로 희생제사를 대신한 기도를 위한 장소, “베이트 크네셋”(그러나, 단지 탈무드, 토라 공부에만 국한되지 않았으며, 사회적, 정치적으로 논쟁되는 이슈들을 실제로 교정하고, 무엇보다 유대교의 가장 핵심적인 전통인 할라카를 제정하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는 사실을 제 2차 성전 시대의 힐렐과 샴마이 학파의 예쉬바의 모형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예쉬바가 당시 영적, 지적 권위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어떤 다른 기관보다 강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유대인들이 정신적, 법적, 영적인 힘의 원천으로서의 토라 공부를 얼마나 강조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예쉬바는 유대교의 법원이었던 “베이트 딘”(beth din)과 정치와 행정의 역할을 했던 산헤드린(Sandhedrin)과도 구별되는 기관이었다. 예쉬바의 대표적인 모형인 과거의 “베이트 미드라쉬”는 미쉬나(Mishnah)를 중심으로 랍비적인 문학을 직접 다루는 토론과 연구의 장소로서 사용되었다. 때로, 예쉬바는 회당의 장소로 겸하여 사용되기도 했으며, 중요한 지역 사회의 결정을 위한 모임의 장소로서 유대인 공동체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운영되었다.

오늘날, 미국과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꽤 많은 예쉬바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그 예쉬바들은 외부적, 내부적인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교육방법론과 그 특징들에 있어서 다양하게 서로 다른 형태로 변형되고 발전되었다. 우선, 현재 미국과 이스라엘에서의 예쉬바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미국의 경우 초등학교 학생들은 지역의 한 예쉬바에 등록하게 된다. 성인식을 의미하는 “바르 미쯔바”(그리고, 대학생은 기본적으로 정통 유대교의 대학을 상징하는 “베이트 미드라쉬”(한편, 이스라엘의 초등학생들은 미국과는 다르게 히브리어와 유대교의 기본적인 교리들을 배우는 “헤데르”(

특히, 결혼을 한 예쉬바 학생들은 “콜렐림”(오늘날, 리투아니안 예쉬바의 교육방법론을 따른 예쉬바는 매우 드물게 존재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리투아니안 예쉬바의 모형인 “베이트 미드라쉬”의 그 내부에는 탈무드와 토라에 관련된 주석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관련 연구 자료와 책들이 벽 전면에 비치되어 있다.

특히, 탈무드 전권을 비롯하여, 모세 아이셀레스(Moses Isserles)와 요셉 카로(Yosef Caro)에 의해 집성된 유대법의 법적 시스템을 상징하는 “슐칸 아루흐”(

학생들은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공부하되, 특별히 앞서 언급했던 “하브라타” 방법으로 친구들과 함께 의논하면서, 깊은 학문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공부는 기본적으로 간략한 매일의 수업과 강의들이 있지만, 본격적인 공부는 친구와 함께 하는 짝 공부 즉, “하브라타”

- 허정문 목사 (고신신대원 졸업, 히브리대학교 교육학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