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테이블에서 12제자들의 좌석 배치
‘ㄷ’자 모양의 3면 테이블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로마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로마의 사회는 가장 상위층에 원로원멤버를 시작으로 귀족, 시민, 노예로 이어지는 사회적 계급구조가엄격히 형성되어 있었다. 공적인 모임에 참석했을 때 각자의 신분에 맞는 자리 역시 정해져 있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당시 로마제국에 편입된 유대사회의 사회적 계급에 대해 언급하신 것이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눅14:8-10)
3면 테이블의 경우 상석과 말석의 확실한 구분이 있었는데,이는 당시 로마의 사회적 블이 갖추어진 최후의 만찬장에 들어갈 때 제자들의 주된 관심과 고민은 온통 ‘과연 누가 상석에 앉느냐’ 하는 것이었다. 만찬장에서 식사하는 중에 서로 누가 크냐의 문제로 제자들 사이에실랑이가 벌어진 것은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어난 것이다.“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22:24)
3면 테이블의 상석은 왼쪽 날개 부분에 있는데 일반적으로 3명이 그곳에 앉는다. 중앙에 잔치의 주빈이 앉고 좌우에 주빈의오른팔과 왼팔이 앉게 된다. 최후의 만찬 테이블에서는 당연히왼쪽 날개의 중앙에 예수님이 주빈으로 앉았을 것이다. 결국 그좌우에 누가 앉아 상석을 채우느냐의 문제는 서로 고만고만한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던 제자들 사이에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민감하고도 치열한 문제였던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이 어머니의 치맛바람을 쓰면서까지 그 자리를 탐낸 것을 보면 사회적상류층으로 올라가고 싶은 이들의 열망을 엿볼 수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명하소서”(마20:21)
성서시대의 문화와 복음서의 기록을 기초로 해서 최후의 만찬테이블에서 요한, 가룟 유다, 그리고 베드로의 좌석 배치를 유추해 낼 수 있다.
요한의 좌석
왼쪽 날개 부분의 중앙은 그 잔치의 주빈인 예수님 자리였다. 주빈의 오른쪽 자리는 주빈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자리였다. 바 로 그 자리는 요한의 몫이었을 것이다.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자 신을 늘 ‘예수의 사랑하시는 자’로 표현했다. 이것은 요한 혼자만 의 착각은 아니었던 듯싶다. 최후의 만찬장에서 예수님의 오른쪽 자리에 요한이 위치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요한은 분명 예수님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고, 자기의 왼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는 당시의 풍습을 통해 볼 때 자연스럽게 오 른쪽에 앉으신 예수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의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 지하여 누웠는지라”(요13:23)
가룟 유다의 좌석
잔치 테이블 상석에 있는 주빈의 왼쪽 자리는 가룟 유다였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떡을 찍어다가 유다의 입에 넣어준 것 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의 테이블은 3명이 한 조가 되 어 겸상을 했는데, 오른손으로 떡을 찍어다가 자신의 왼편에 앉 아 있는 사람의 입에 넣어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 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주시니”(요13:26)
이렇게 주빈인 예수님과 그 좌우에 앉은 요한과 가룟 유다 가 최후의 만찬 테이블의 상석을 차지했다. 주빈과 함께 그 좌우 에 앉는 축복은 명예를 중시하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누구나 추 구하던 가치였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왼편에 앉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줄 까? 자신의 몸을 왼쪽 팔꿈치를 이용해 기대던 당시의 풍습에 기 초해 볼 때, 예수님은 배반자 유다의 품에 안겨서 식사를 했음을 보여준다. 유다의 배반을 이미 알고 있던 예수님은 원수의 품에 안겨서 식사를 하심으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 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한편,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예수님을 느끼며 유다는 제대 로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 특히 자신의 배반을 예언하시고 친히 떡을 찍어다가 자신의 입에 넣어주는 순간, 유다의 심장은 아마 도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을 것이다. 결국 버티다 못한 유다는 만 찬장을 떠나게 된다.
베드로의 좌석
베드로의 좌석은 아마도 테이블 오른쪽 날개의 가장 말석이었 을 것이다. 베드로가 말석에 앉았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는 몇 가지 정황적 증거들이 있다.
첫째, 베드로는 예수님의 좌우 상석에 당연히 요한과 자신이 앉을 것으로 기대했다. 평상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수제자 그 룹에 속해 있던 베드로에게 2개 밖에 남지 않은 상석의 경쟁자 는 요한과 야고보였다. 그런데 한 자리는 요한이 이미 차지했고 나머지 자리를 전혀 의외의 인물인 가룟 유다가 차지하는게 아 닌가? 상석을 차지하지 못한 베드로는 내친 김에 가장 말석으로 직행했을 것이다. 대부분이 갈릴리 출신인 제자들 사이에서 베드 로는 유다 지방의 소도시인 가룟(Cariot) 출신인 유다에게서 최 대한 멀리 앉으려 했을 것이다. 가룟 유다는 모두 갈릴리 출신인 제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유다 지방 출신이었다. 당시 갈릴리 사 람들과 유다 사람들은 서로를 철저하게 경멸하고 무시했다. 유다 사람들은 갈릴리 출신에게 딸을 배우자로 주지 않았는데, 그 이 유는 ‘사람이 짐승과 같이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곧 갈릴 리 사람들을 짐승에 비유했던 것이다.
둘째, 배반자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을 듣고 베드로가 보여준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는 무시무 시한 예언 앞에 제자들은 저마다 “저는 아니죠?”하는 표정을 지 었다. 이 때 베드로는 요한에게 머릿짓을 해서 배반자가 과연 누 구인지 예수님께 묻도록 신호를 보냈다. 베드로의 신호를 받고 예수님의 품에 안긴 요한이 “주여 누구오니이까?”라고 묻는 말 씀이 나온다.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 구오니이까”(요13:24,25)
베드로의 머릿짓 신호를 요한에게 보낸 것을 볼 때 베드로는 상 석에 앉은 요한의 맞은 편인 말석에 앉았을 것이다.
셋째,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순서와 베드로의 엉뚱한 반응에서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 자신 의 옆에 앉은 제자들부터 차례로 발을 씻겨주셨다. 민망하지만 제 자들은 순순히 예수님께 자신의 발을 맡겼다. 드디어 말석에 앉 아 있던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베드로는 발을 내밀지 않고 버 팅 길 수밖에 없었다.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 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 느니라”(요13:8)
일반적으로 하인들이 잔치를 서빙하며 발을 씻겨주어야 하지 만, 최후의 만찬 자리는 당시 예수님을 체포하려던 종교지도자들 을 피해서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비밀스런 모임이었다. 하인 이 없다면 당연히 가장 말석에 앉은 사람이 참석자들의 발을 씻 겨주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베드로는 말석에 앉은 것도 서러운데, 다른 제자들의 더러운 발까지 씻어줘야 한다는 사실이 영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베드로가 끝까지 모른 척하며 버티자, 결국 말보 다 항상 모범적인 행동으로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일어나셨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13:4)
베드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예수님이 하시자 갑자기 쥐구멍 이라도 찾을 정도로 민망해졌다. 결국 그는 자신의 발을 씻길 수 없다고 생트집을 잡고 있는 것이다.
류모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