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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투데이

예수의 빨간 글자와 주석가들의 검은 글자

최근 의 글 “예수에 대한 금기의 구절들” 저자는 예수께서 스스로에 대해 하신 말씀들이 “전통적인 신학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간과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인간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예수를 발견하기 위해 이 ‘금기 구절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기’ 구절 들은 주로 요한복음과 일부는 바울 서신에서 나온다.

각각의 구절은 예수 스스로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글의 요점은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예수의 실제 말씀을 묵살하고 신학적으로 무의미한 수사법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참된 예수에 대한 모든 신학적 그림자는 ‘예수의 실제적 말씀’을 위한 부차적인 것이라는 이 글의 전제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예수께서 결코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그렇게 주장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전제는 전반적으로 영감의 교리와 맞지 않는다. 그 전제는 신약이 예수에 대한 영감된 해석이라는 진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신약 (검은 글자)에서 예수에 대한 다른 진술 보다 예수 스스로에 대한 말씀 (빨간 글자)에 더 무게를 두려는 이 글의 시도는 영감된 성경인 신약의 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복음주의자들은 모든 성경은 영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과 딤후 3:16의 바울의 진술 또한 신약이 진리임을 확신하고 있다. 이러한 확언은 빨간 글자가 검은 글자보다 더 영감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모든 신약의 말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따라서 동등하게 영감으로 쓰여 졌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신약 말씀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약화시킨다. 저자가 알려져 있는 않은 신약의 글이 예수를 하나님 (시45:7을 인용하고 있는 히1:8)과 야훼 (시102:25-27을 인용하고 있는 히1:10-12)로 동일시하는 것은 하나님께 의존하시는 예수의 말씀 (예를 들면, 요20:17)과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두 언급 모두 예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신학자들이 예수의 정체에 관한 두 구절들을 동일하게 참된 것(예수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께 속해 있다)으로 바르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모든 해석은 인간적 첨가를 담고 있다”는 전제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해석들은 영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닌) 진짜 예수’와 ‘(하나님이라는) 해석된 예수’를 구별하는 것은 (역사적 진술인) 복음서가 ‘예수에 대한 해석’이라는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 동안 일어난 사건들은 많은 해석들을 가능하게 했고, (현대 기자들처럼) 복음서의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자신들의 해석이 진실일 뿐만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키려 했다.

일단 복음서가 해석 (하나님의 해석)임을 깨닫게 되면, 빨간 글자의 예수를 검은 글자의 해석가들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고지식 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전적으로 요한복음에서 추출한 ‘금기 구절’에 기초해 예수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영감을 받은 해석가들의 도움 없이 예수를 이해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학자 요한은 요한복음의 바로 첫 구절에서 예수에 대한 ‘영감된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

이전 글에 써 있던 한 문장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신학자들은 성경이 예수에 대해서 말한 것을 해석한다.” 요한도 마찬가지 이다. 그는 성경이 (창 1:1-3)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해석 한 것이다.

Picture - 거룩한 신비 - 소렙은 예수의 신성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 히브리서의 저자는 분명 칠십인역(LXX; 구약에 대한 헬라어 번역)의 시편102 (칠십인역에서는 시편101편)의 해석을 인용하고 있다. 시102:25 (칠십인역, 101:26; 102:25; 히브리어 본문, 102:26)에 있는 단어인 ‘주’ (큐리오스)는 오로지 야훼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 구절이 예수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서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를 야훼와 동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