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스라엘투데이

기독교 여성이 야드 바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바우리는 기념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전시관의 방들이 연대순으로 있었는데, 유대인들을 조롱하는 신문에서 오려낸 시사 만화 등 반-유대주의를 뿌린 씨앗들로 시작되고 있었다. 지그재그 모양의 통로를 지나 다음 방으로 넘어 갔을 때 나는 아름다운 가족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을 당시 그들의 삶, 직업, 아이들의 나이와 날짜가 적혀 있었다.

돌아서 나가자 나는 복원된 벽돌 길 위을 걸으며 실제로 비틀거렸다. 이것은 나에게 끔찍한 공포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이 고통을 삼키려고 노력했지만, 심장이 슬픔으로 가득 차고 있음을 느꼈다.

모든 구역에는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잡혀 간 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어머니, 형제, 자매들의 울음 소리를 무기력하게 들으며, 자신들이 어떻게 도망 쳤고 숨었는지를 이제는 노인이 된 사람들이 전하고 있었다.

한 나치 장교의 방에는 책상, 타자기, 가구들이 있었다. 그의 방에서 이루어진 생사를 가른 끔찍한 인터뷰가 어떤 느낌이었을지 보여주고 있었다.

방향을 틀어 걷자, 유리 바닥 아래에 수용소에서 나온 수 백 컬레의 신발들과 유품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조용히 하려고 노력했지만, 심호흡을 했을 때는 이미 나의 상한 심령이 흐느끼는 슬픔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죽음의 수용소에서 온 실제 표지판을 보았을 때, 억장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는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고, 벽과 전시물 사이에서 갇혀 있었다.

티슈로 얼굴을 가린 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었을 때, 한 유대인 노인 여성이 나에게 다가와 꼭 안아 주었다. 내 눈물이 그 분의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너무나 평화로운 그녀의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거듭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디 이해해 주세요.” 역사상 유대 민족에게 보여준 최고의 증오를 묘사하는 이 곳에서 유대인 여성이 이방인인 나에게 그런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벅찬 감정을 안겨주었다. 내가 조용해질 때까지 그녀는 나를 계속 꼭 잡아 주었다. 잠시 후 나는 그녀의 친절함에 감사했고, 기념관 밖으로 나왔다.

나는 오후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 급히 밖으로 나왔고,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따뜻함이 나를 감쌌고, 아름다운 예루살렘의 전경이 내 눈에 가득히 들어 왔다. 이 민족은 왜 고향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일까? 왜 전쟁이 아닌 평화의 땅을 가질 수 없었을까?

그 때의 만남을 회상하면 지금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격을 느끼곤 한다. 이 감격은 앞으로도 결코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평화와 유대 민족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게 만들고 있다.

Picture - 회상의 창: 야드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