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스라엘투데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록 밴드 U2의 리더 싱어 보노는 2001년 beliefnet.com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 상 가장 강력한 개념은 ‘은혜’라는 개념으로, 그것은 내가 기독교인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보노는 율법과 은혜의 섭리를 믿는 가장 적절한 예가 되고 있다. 율법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행위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을 받는 것이다.

구약에서 은혜의 개념을 제거해 버리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야곱은 축복을 위해 수고하는 것을 비난하기를 좋아하는 설교자들이 주로 예를 드는 인물이다. 출생 당시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은 것(창25:26)부터 시작해 천사와 씨름을 했던 (창32:24) 야곱은 영적인 이익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성경의 이야기는 처음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닌 경우가 많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계략을 꾸민 리브가의 계획이다. 야곱의 축복은 전적으로 형을 흉내 내는 능력에 달려 있었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야곱은 의도적으로 에서를 흉내 내다가 실패할 경우 저주를 받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만지실진대 내가 아버지의 눈에 속이는 자로 보일지라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하나이다” (창27:12). 하지만 모든 것들이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이삭은 잠시 주저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에서를 축복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본문을 좀 더 신중히 읽어보면, 처음에 야곱이 받았던 축복은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전해졌던 그 축복이 아니라, 세상적인 물질의 축복이었다. 이 점에서, 그의 축복은 에서가 받은 축복과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난 것은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이삭과 그의 아들들이 똑 같은 전제, 즉 개인의 가치는 하나님의 축복에 기초한다는 전제 아래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처럼 당시에도 인간은 은혜의 절대성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것이다.

하지만 야곱에게 전해진 아브라함의 축복은 이러한 축복의 이야기가 전적으로 은혜에 관한 것임을 보여준다. 랍비 유다 알터(1847-1905)는 자신의 책 스팟 에멧 (진리의 언어)에서 이 주제를 훌륭하게 다루었다. 첫째로, 그는 왜 이삭이 단지 ‘아브라함을 위하여’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 의아해 했다 (창26:24).

“이삭은 축복에 대한 정당한 자격이 없었단 말인가?”라고 랍비는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위해서 [이삭의] 씨가 무성하게 되기를 원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세계가 정의의 특성에 따라서만 존재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정의 속에 은혜의 특성을 더하셨다. 이삭은 분명 정의의 특성에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 하지만 창조주께서는 리브가를 통해서 이것을 바꾸셨다. 이삭의 의지와 달리 야곱이 축복을 받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은혜의 속성을 더하신 것이다.

스팟 에멧은 야곱을 공모자로 묘사하기 보다는, 그가 달리 행동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야곱이 속이지 않고 의롭게 행동 했었다면, 그의 공로 - 즉 그가 의로웠기 -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고 결론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스팟 에멧은 의로운 사람만이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다면, 결국 아무도 그런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람은 모두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정의의 속성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은혜의 속성은 하나님께서 법이 아닌 은혜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이 세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은혜로 선택되었고, 이삭과 야곱, 이스라엘도 은혜로 선택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은혜는 신약에서처럼 구약에서도 절대적 의미를 가진다.

Picture -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창27:28)
운명 아니면 속임수?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다 (Destiny or decep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