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정보부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상황에 대한 확실하고도 완전한 그림을 얻기 위해 관계 있는 모든 작은 조각의 정보도 수집한다. 150년 전 유대 민족들이 본격적으로 이스라엘로 돌아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곧바로 이 땅에서의 자신들의 뿌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세계에서 이 약속의 땅으로 온 귀환자들에게 길을 알려 주는 GPS나 도로 표지판도 없었다.
벧엘과 실로를 여행하는 중, 립킨투어스의 CEO이자 나의 아들인 아론은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피해 브엘세바에서 밧단 아람에 있는 삼촌 라반에게 가는 길에 잠들었던 (창28:19) 곳으로 추정되는 수 많은 장소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창28:19). 그곳에는 야곱의 ‘베개’ 역할을 했을 것 같아 보이는 매끄러운 돌 조각들도 보였다 (창28:11).
베이트 엘 (벧엘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의미) 정착촌 급수탑에서 보면 서쪽으로는 전체 해변 평야와 지중해 바다, 북쪽으로는 헬몬산, 남쪽으로는 예루살렘, 그리고 동쪽으로는 요단강 건너 산맥들을 볼 수 있다. 이 지역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들의 자손들에게 상속물로 약속된 곳이다 (창13:14-17).
유대 백성들이 디아스포라에서 돌아오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지역 아랍인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의 이름을 물었다. 대부분의 장소들이 성경의 이름이나 십자군의 이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히브리어로 베이트 엘은 아랍어로 비틴으로 알려져 있다; 실로 근처의 신질이라는 아랍 마을의 이름은 세인트 질이라는 이름의 프랑스 십자군 이름을 따른 것이며, 팔레스타인이 통치하고 있는 나블루스 (히브리어로는 성서의 세겜, 창33장 참조)는 아마도 이탈리아 출신의 십자군들에게 주어진 것으로 보이는 나폴리에서 왔다.
언약궤가 369년 동안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The Ark of the Covenant)
벧엘에는 또한 모슬렘의 성지로 섬겨지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십자군 시대의 부속 가옥이 딸려있다. 이 두 채의 건물은 야곱이 잠들기 위해 머리를 두었고,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 환상을 본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바위에서 몇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창28:12).
이 건물은 ‘베개’ 바위와 아마도 북이스라엘 열 지파가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해 세웠던 이스라엘 성소(제단)가 있었던 곳 사이에 위치해 있다. ‘북쪽 출신’과 ‘남쪽 출신’ (유다, 베냐민, 레위) 사이의 심한 내전으로 이 성소는 파괴되었지만 (왕하23:15), 그 폐허만은 남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 모두에게 관광객들과 순례객들을 위한 인기 방문지가 되고 있다.
우리는 북쪽으로 이동해 실로로 갔다. 유대인들이 이곳에 현대적인 실로 정착촌을 세웠을 때도 그들은 이 성서 장소의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아랍 이웃들에게 이름과 증거들을 물어보았다. 탈무드에 따르면 언약궤가 여호수아에 의해서 실로로 옮겨져서 369년 동안 간직되었다(수18:1). 선지자 사무엘이 대제사장 엘리를 섬겼던 곳도 이곳이다 (삼상3장).
한편, 실제적인 증거가 아랍의 침략으로 파괴되었던 두 개의 비잔틴 바실리카 사이의 폐허에서 발견되었다.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실로의 위치를 최종적으로 확증해주는 잘 보존된 모자이크를 발견한 것이다: “예수께서 실로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를.”
하지만 유대정통주의 랍비들이 금지된 유대인의 이름인 예수를 언급하는 유대인 관광 안내자들과 고고학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Picture - 퍼즐 조각들: ‘예수께서 실로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를’ (Pieces in a puzz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