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를 만든다는 것은 교육하고 가르치라는 의미를 지닌다. 제자를 만드는 것이 진리를 전하는 방법이다.
잃어버린 자들이 죄를 뉘우치고 회심하면 그 후부터는 일생동안 말씀을 가르쳐 그들의 성화를 돕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자를 만들라는 개념을 더욱 명확하게 제시했다. 우리는 상황이 열악할 때도 제자들을 양육해야 한다.
이 사역은 어렵다. 그러나 힘겨운 사역은 충분한 보상을 안겨준다. 왜냐하면 복음 전도를 통해 회심했다고 말하는 만 명의 사람보다 한 사람의 견실한 제자가 더 낫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은데 돈이 부족하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순전한 사람들, 곧 성경에 충실한 성경적인 사람들이 부족하다. 제자를 양육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보석과도 같다. 예수님은 이 사역이 모든 민족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만일 사역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만족한다면 그것은 포부가 매우 작고 왜소하다는 증거다. 이 세상 방방곡곡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비로소 만족할 수 있다.
교회나 사역자가 자신이 있는 곳에서만 번영을 이루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것은 "가라"는 명령만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것이다. 또한 복음 전도와 교회 설립의 방법과 관련해 오늘날 사람들 앞에 제시되고 있는 육신적인 전략에 굴복할 때도 "가라"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결과가 빚어진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중보 기도도 모르고, 선포의 능력도 모르는 유아적인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전략을 단호하게 내버려두고 성경이 가르치는 방법을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대중매체, 사이버공간, 컴퓨터, 인터넷, 기술문명이 크게 발달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발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왜냐하면 폐쇄된 국가들에게 책들과 문헌과 여러 가지 필요한 것을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지상 명령을 완수할 수는 없다.
지상 명령은 육화된 선교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하셨을 때 직접 인간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셨다. 그분은 교회도 그렇게 하라고, 곧 육체와 피를 가진 사람을 보내라고 명령하신다.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 있고, 또 우리의 담대함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분의 하나님은 얼마나 위대하신가? 하나님의 주권만 내세운 채 몸을 사리는 사람들이 있다. 촉매제가 되려면 수동적으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촉매제가 되려면 나가 싸워야 한다. 복음이 더 많이 전파되기를 원한다면 서재에 불만 밝히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가라. 모든 민족에게 가라. 그러나 옳게 나아가라”고 말씀하신다.
내용 발췌 = 목회자는 신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