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무능했다. 걸핏하면 술 취해 들어와 집안 살림을 때려 부수며 행패를 부렸다. 어머니는 삼형제를 키우면서 온갖 고생을 다했다. 그에게 아버지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는 거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주먹을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몸집이 커지면서 따르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어느덧 아버지보다 덩치가 커졌다. 아버지보다 힘이 셌지만 덤비지 못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전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밥상머리에서 따귀를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던졌다. 아버지에게 대들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아버지가 눈을 부릅뜨면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제대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간 날이었다. 어머니의 눈 주위가 파랗게 멍들고, 입술은 터져 피가 흥건했다. 순간 그는 이성을 잃고 아버지의 멱살을 잡았다. 아버지는 움찔 놀라더니 곧 그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넘어진 그에게 발길질을 하며 온갖 욕을 퍼부었다. “이 후레자식이 아버지 멱살을 잡아? 어떻게 하려고? 어디 해봐! 넌 벼룩도 네 손으로 못 죽여. 이 겁쟁이 자식!”
그는 어머니 옆에 주저앉아 울었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으로 벽을 쳤다. 문짝 하나를 다 때려 부수고 집을 뛰쳐나왔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겁먹은 눈동자를 보았다.
그날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눈을 피했다. 점점 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는 괴로웠다. 차라리 자신이 따귀를 맞는 것이 나았다. 아버지를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집에서 나와 따로 살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미안함이 복잡하게 얽혀 정리되지 않은 채 살아가던 어느 날, 그는 아내를 만났다. 1년 동안 연애를 한 후에 결혼했다. 처음으로 부부 싸움을 한 날, 아내는 대화가 잘 되지 않자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날 그는 아내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자존심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지만 아내가 소리를 지르면 머리가 텅 비어버렸다.
심장이 빨리 뛰고 손에서 땀이 났다. 그의 큼지막한 손과 다부진 어깨도 그 두려운 감정을 몰아내지 못했다. 화난 아내가 아버지처럼 보였다. 아내의 눈빛이 그를 짓눌렀다. 그래서 아침에 아내가 깨기 전에 조용히 집을 나섰다. 그녀의 눈을 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싸우고 싶지 않아요. 아내의 눈빛이 무서워서.”
트라우마trauma, 남편의 가슴 깊이 새겨진 상처이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코끼리 말뚝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서커스단에서 코끼리를 길들일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새끼 코끼리 목에 줄을 건 후 말뚝에 그 줄을 묶는다. 새끼 코끼리는 목에 감긴 줄에서 벗어나려고 애쓴다. 그러나 소용없다. 지친 코끼리는 포기한다. 땅에 주저앉아 순응한다. 코끼리는 점점 몸집이 커지고 힘이 세진다. 나무를 들이받으면 쉽사리 쓰러지고, 코로 나무를 들어 올리면 뿌리째 뽑힌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세져도 말뚝을 뽑을 생각을 못한다. 어릴 때의 기억 때문이다. 땅에 박힌 말뚝은 코끼리 내면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어.’
남편에게 일어난 일이다.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은 성인이 된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의도적인 노력을 해야 벗어날 수 있다. 말뚝을 뽑아 올리려면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는 개인의 내면에서 영상처럼 반복된다. 극장 의자에 꽁꽁 묶인 채 끔찍한 영화의 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도 소리가 들리고, 눈을 감아도 그 장면이 떠오른다. 트라우마 징후이다.
남편은 아내와 다툴 때마다 아버지로 인한 상처가 떠오른다. 아버지와 아내, 두 사람은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남편은 아내보다 힘이 세고, 목소리도 크지만 그의 두려움은 아내를 통해 반복된다. 반복을 멈추려면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무서운’ 감정은 ‘무능한’ 감정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처할 힘이 없을 때, 사람은 무서움을 느낀다. 눈앞의 꼬마가 장난감 칼을 들고 휘두르면 무섭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꼬마를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수부대 요원이 칼을 들고 찌를 태세를 취하면 겁에 질린다. 무서워서 두 다리가 떨린다.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무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대상에게 무서움을 느낀다. 어떤 사람은 신용카드 빚이 무섭다. 과거에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해 고생했다면, 카드를 쓰는 게 무서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이성을 만나서 사귀는 게 무섭다.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울 것이다.
무서움을 이겨내려면 무서움의 대상을 정면으로 바라봐야 한다. 나와 그 대상을 비교해보라. 누가 더 힘이 센지 객관적으로 따져보라. 전력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유치한 짓이 아니다. 자신을 묶은 말뚝을 뽑아내고 싶다면 말뚝을 잡고 흔들어봐야 한다. 얼마나 단단하게 박혀있는지 확인해보라. 잡고 흔들어보면 안다. 뽑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어린 시절, 남편은 아버지의 학대를 벗어날 능력이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더 이상의 학대는 없다. 그가 벗어나지 못한 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다. 학대는 사라졌지만 두려움이 남았다. 그러나 벗어날 방법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흔들어보는 것이다. 코끼리 말뚝을 잡고 흔들듯이 두려운 감정을 잡고 흔들어보라. 앞뒤 좌우로 흔들다보면 흙이 밀리면서 공간이 조금씩 만들어진다. 원심력을 이용해서 말뚝을 뱅뱅 돌리면 말뚝 주위로 빈틈이 조금씩 생긴다. 손힘이 뿌리까지 닿으면 말뚝은 이내 뽑힌다.
남편은 혼자가 아니다. 아내가 도울 수 있다. 아내는 말뚝이 아니다. 남편을 속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돕는 사람이다. 말뚝을 뽑으려 하는 손에 힘을 보탤 수 있다.
모든 사람은 결핍이 있다. 그리고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건, 자신 안의 결핍을 보상해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일 것이다. 남편에게 아내는 결핍을 채워줄 사람이다.
부부 사이의 갈등은 주로 배우자가 가진 결핍에서 비롯된다. 그 결핍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지만 실재한다. 그것을 채워달라고 배우자에게 호소하고 강요하면서 고통을 준다. 부부가 절망에 빠지는 이유다. 그러나 이것이 곧 기회다. 배우자가 고통을 호소하는 문제 속에 그가 바라는 욕구가 숨어있다.
배우자가 지속적으로 고통을 호소한다면 귀를 기울여 진심을 알아봐야 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배우자가 채워줄 수 있다. 아내가 두려움에 떠는 남편을 이끌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아내여, 남편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결핍이 있는 사람이다. 겁먹은 소년이 당신 품에 안겼다. 사내로 키워라. 참고 견뎌라. 그가 진정한 남자가 되면 넓은 가슴으로 당신을 안아줄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고 보호해줄 것이다. 포기하지 마라. 그날이 머지않았다.
소년이 치유되면 남자가 된다.
† 말씀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 신명기 56장 3, 4절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전도서 4장 9~12절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 에베소서 4장 32절
† 기도
상대방의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보고 함께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옵소서. 두려움이 마음을 힘들게 할 때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평안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우소서.
† 적용과 결단
부부에게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서로의 아픈 부분을 위로하며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하며 결단해보세요.
낭독으로 만나는 테마
귀로 들어요~ 갓피플 테마. 눈으로만 읽는 것과는 다른 은혜가 뿜뿜. 테마에 담긴 주님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더 다양하고 새롭게 나누어지기를 기도하며, 갓피플 직원들이 직접 낭독했습니다. 어설퍼도 마음만은 진실한 낭독러랍니다^^ 같은 은혜가 나누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