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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비의 행복문답

믿지 않았던 한 남편의 고백 "아내를 울리고 싶지 않아요"

나는 믿지 않는 남편들이 어떻게 교회를 오게 되었는지 항상 궁금했어요. 그래서 자주 물었습니다. 이유는 제 각각이죠. 공통점이 있더군요.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참 고마웠어요. 나는 아내가 원해도 못해주는 게 있거든요. 마트에 장 보러 같이 가는 게 처음에는 그렇게 힘들었어요. 말도 안 되지만 그랬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인데, 믿지도 않는 남편이 일요일 아침마다 꼬박꼬박 일어나 운전해서 교회 와주는 게 어찌나 고맙든지요.

당연히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어요. 신앙을 떠나서 친구처럼 잘 지낸 남편이 적지 않았습니다. 둘이 밤늦게 만나 커피를 마시며 사는 이야기하며 울고 웃었지요. 나는 그 집 아내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안전한 친구(?)였어요.

나를 만난다고 하면 남편이 밤늦게 집에 들어와도 아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았죠. 남편이 나한테 이야기를 해줘서 알았어요. 목사님 만나고 온 날은 아내가 잔소리도 안 하고 잘 해준다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습니다.

남편 한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오래 남아요. 결혼 전에는 교회에 관심이 없던 남편이었어요. 아내는 열심히 믿었죠. 결혼 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함께 다녔어요. 군말 없이 몇 년을 함께 다녔죠.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지쳤어요. 교회 목사님 설교도 귀에 안 들어오고, 교회는 어색하고. 참다 참다 아내에게 말했어요. 더 이상 교회 못 다니겠다고. 냉각기가 찾아왔죠. 교회 문제로 자주 다퉜어요.

갈등이 깊어졌죠. 그래도 남편은 물러서지 않았어요. 오래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으니까요. 아내도 지쳤죠. 남편이 꿈쩍도 하지 않으니까요.

침묵을 깨고 아내는 또다시 남편에게 교회 가자고 말했죠. 남편은 평소와 달리 단호한 어조로 말했어요. 그 이야기 더 이상 하지 말자고요. 아내는 차가운 벽을 느꼈어요. 침대에서 일어나 옆방으로 갔죠. 아내가 남편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방 너머로 아내의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남편은 침대에 누워 아내의 울음소리를 들었죠. 괴로웠어요. 아내를 더 이상 울게 할 수는 없었죠. 그 눈물을 닦아줄 용기는 없었지만, 더 이상 울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동의 각서는 없었지만, 남편은 그날 이후 교회 한 귀퉁이에서 물리적인 공간을 성실하게 지켰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귀는 열렸고, 말씀은 들어갔고, 그는 믿게 되었죠. 동사 몇 개로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많은 시간이 필요했어요.

내가 사는 날 동안
아내를 더 이상 울리고 싶지 않아요

그가 말했어요. “나는 일단, 하나님 사랑은 잘 몰랐고, 아내가 우는 게 마음 아팠던 것뿐이죠. 아내가 우는 게 괴로워요. 아내를 사랑하니까요. 내가 사는 날 동안 아내를 더 이상 울리고 싶지 않아요.”

그는 더 이상 아내를 울게 하지 않았지만, 날 울게 했어요. 나는 그 자리에서 참지 못하고 울어버렸습니다. 나는 반성했어요. 나는 그처럼 아내를 배려하고 사랑하는가 되묻게 되었죠. 자주 그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날 돌아보게 돼요. 아내 사랑이 교회 직분으로 따질 문제는 아니잖아요. 자칭 고귀한 신앙 때문에 희생당하는 수많은 아내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라고 예외가 아니겠지요. 내가 읽은 신학 서적 몇 권이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수는 없어요.

참으로 신기한 것은, 내가 남편에게 “어떻게 교회 다니게 되었느냐”물었을 때, 아내도 처음 그 이야기를 듣게 된 겁니다. 소스라치게 놀라 감동했어요. 같이 교회 다니는 남편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던 거죠. 옆 좌석이 텅 빈 천국 열차에 혼자 오를까 봐 두려웠나 봅니다. 다행이지요. 둘이 손잡고 같이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내가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물었어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도 되느냐고요. 두 사람이 흔쾌히 말했습니다. “물론이죠.” 그래서, 이 글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이 글을 보고 계시지요?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두 분을 만나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데는 서툰 사람이니 글을 통해서라도 내 마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