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자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ㅠㅠ 언제쯤 좋은 날이 올까요?

우리의 마음이 세상을 향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이 순간에 누리는 만족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을 때는 자신과 세상의 죄로 인하여 마귀에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을 때라야 비로소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나라고 믿게 하는 거짓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지금 여기, 이 순간’을 부정하거나 저항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거짓자아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거짓자아는 죄로 인하여 결핍과 욕구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만족이나 성취 같은 것이 없습니다. 지나간 과거의 경험에 기초한 나, 지금은 아니지만 미래에 그 무엇을 성취할 것이라는 기대로 더 깊은 염려, 걱정, 불안에 묶인 나, 그것이 바로 거짓자아의 정체입니다.

거짓자아에 사로잡히면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집니다(엡 2:3). 육체의 소욕이 발동하여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한 것들이 올라오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가 됩니다(마 11:28). 참으로 이상한 것은 우리가 수고하는 것은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기 위해서인데, 열심히 수고했지만 결국 더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는 자가 됩니다(마 6:34). 내일 일은 내 일(my duty)이 아니라 내일(tomorrow)이 염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염려하게 됩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현재 시간으로 끌고 와서 ‘지금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것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지금의 나를 나라고 믿게 하는 거짓자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회개) 자기 십자가를 지고(거짓자아의 포기) 예수님을 따를 때(마 16:24), 비로소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 유대인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I am)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래 논리적으로 따지자면 “있었느니라”(I had been)이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원히 현존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나의 삶이 아니라, 영원히 현존하시는 그분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분 안에서 그분을 나타냄으로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만족하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에 묶이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는 언젠가 잘 살기 위해서 오늘을 희생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오늘(지금 여기, 이 순간) 주님과 함께함으로 영생을 누리는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1. 시간적 관점에서의 삶을 차원적 관점의 삶으로 바꾸어 생각해보십시오.
2.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어떤 행위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즐거워해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저항하는 당신의 마음을 부인하십시오.

내용 발췌 = 하나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