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용서를 무조건적인 절대적인 사면의 의미로 생각한다(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율법의 요구를 무시하셨거나 폐지하셨다고 믿는다.
‘하나님이 기꺼이 용서를 베푸신다면 속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용서와 희생이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죄는 용서를 받거나 속죄를 하거나 둘 중에 하나일 뿐, 둘 다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은 정의의 의미를 언뜻 생각하면 그럴듯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성경의 가르침과 명백히 다르다. 그것은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라는 말씀에 간단하게 요약되어 있는 대로 속죄에 관한 성경의 모든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속죄 없는 용서는 율법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율법을 옹호하고 굳게 확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온전한 용서를 가능하게 만든다.
로마서 3장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라고 말했다.
모두들(칼빈이 말한대로) 이신칭의가 기독교 신앙의 근본 원리이자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 주제인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하길 바란다. 이 교리는 복음의 중요한 요소들(하나님의 의, 은혜, 정의, 율법)을 하나로 집약할 뿐 아니라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죄에 대한 진노와 긍휼을 조화시키고,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시키면서 값없이 주어지는 용서를 가능하게 한다. 이 진리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깊은 경외심과 신앙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죄인들을 위해 성취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분의 십자가가 성취한 것을 생각하면 더욱 감사하고 감격스럽기 그지없다.
그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나타내고, 은혜의 장엄함을 드높이며, 하나님의 의를 옹호하고, 그분의 율법을 굳게 세운다.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이다.
내용 출처 = 바울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