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입학때 받은 조언 중 하나는 똘똘한 여자친구의 엄마와 친해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의아했지만 아이의 학교생활이 시작된 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알림장도 학교생활도 아이를 통해서 알기는 불가능했고 여자친구 엄마에게 물어봐서 궁금증을 해결하곤 했습니다.
여전히 아이를 통해서 전해 듣는 건 적지만 그런 아들을 이해하고 오히려 믿으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다름의 차이가 틀린 것은 아니기에 아이가 가진 특성을 믿어주고 인정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아들이 네 살쯤 되면 많은 엄마가 편지를 보내온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의 소중한 아이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놀라워한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동안 보모에게 두 아이(열두 살 여아와 네 살짜리 테러리스트)를 맡겼는데, 나중에 작은 아이에게 보모 아줌마와 뭘 했는지를 물어보았어요.
"게임을 했니?", "네, 엄마."
"무슨게임?", "숨바꼭질이요."
"뭘 숨겼니?", "장난감이요."
"어떤 장난감?", "제 장난감이요."
"누나도 같이 놀았니?", "네, 엄마."
"장난감은 다 찾았니?"
"네 엄마...그런데 이제 이야기 좀 그만하면 안 돼요?"
적지 않은 엄마가 "이제 이야기 좀 그만하면 안 돼요?"라는 말을 아들에게 듣는다. 도대체 아들에게 듣는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성인 남성과 마찬가지로 남자아이는 엄마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주제에 관해 할 말이 별로 없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해야 하기에 정보가 필요하고, 상세한 내용을 알려면 질문을 해야한다. 반면 아들은 지나간 일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음 활동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는데 지나간 일을 왜 이야기하느냐는 것이다.
남자아이 중에도 늘 재잘거리는 아이가 간혹 있기는 하지만, 연구를 통해서 밝혀진 남자의 행동 양식은 대개는 이와 다르다. 엄마의 질문 공세를 받으면 대부분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엄마는 좋아서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지만,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아들은 성미가 고약해지고, 이에 엄마는 당황스러워진다.
아내와 나는 데이비드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우리에게 속내를 털어놓길 꺼리는 아들을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아내는 개학 첫날 학교에서 데이비드를 데려오면서 이렇게 질문했던 것을 기억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니?"
"좋았어요."
"학교에서 뭘했니?"
"아무것도 안 했어요."
"재미있는 일 없었어?"
"없었어요."
둘째 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이비드, 오늘 하루는 어땠니?"
"좋았어요."
"학교에서 뭘 했니."
"아무것도 안 했어요."
"재미있는 일 없었어?"
"없었어요."
셋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데이비드, 오늘 하루 어땠니? 재미있는 일은?"
"없었어요."
나흘째 되던 날, 데이비드는 엄마를 빤히 바라보면서 조용하고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 할 말이 있어요.학교는 매일 똑같아요. 혹시 달라지는게 있으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아내는 스무고개 놀이는 그만 두기로 마음먹었지만 가끔은 아들의 입을 열게 하려고 노력했다. 효과는 별로 없었다.
아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데이비드를 도통 모르겠어요. 이 아이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 당시 우리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부모와 어떻게 대화하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여성은 일반적으로 그날의 기분 같은 주제를 포함해 자기감정에 대해 대부분의 남성보다 더 자주 이야기 한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이러한 행동은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아들은 대체로 실황 중계식 대화와 경험을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딸들만큼 자주, 적극적으로 들려주지 않는다.
아내는 "오늘 하루 어땠니?"라고 물은 것은 지극히 정상이었고, 데이비드가 그런 이야기를 꺼리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었다. 아내는 아이가 5학년이었을 때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훗날 데이비드가 십 대가 되고 우리가 결혼 세미나에서 사랑과 존경 원리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 아내는 아들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비결은 직접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냥 아들 곁에 있어주라. 되도록 말을 적게 하고!
<속터지는 엄마, 억울해 하는 아들>에머슨 에거리치 p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