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양

주님! 내 잔이 넘치도록 성령충만하게 하소서

어떻게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가?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통제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성령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려고 오셨다.

내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모든 부활의 능력 가운데 나를 통하여 그분의 삶을 사시며, 내 몸 안에서 행하시며, 내 마음으로 사랑하시며, 내 머리로 생각하신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듯이,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 충만을 받는다.


#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

우리가 영적으로 태어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충만케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이 감동을 주실 때 그것을 거부하거나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그분은 더 이상 우리를 인도하거나 어떤 지시도 주시지 않는다.

성령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분이 자기 안에 살고 계신지 아닌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오죽하면 “만일 성령님이 교회에서 떠나신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 우리가 진정으로 영적인(신령한)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주님으로 모셔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님에 의해 통제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슬픈 사실이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구원 받은 것에 대해 처음에 얼마 동안 기뻐하다가 어느덧 로마서 7장에 묘사된 그런 육신적 그리스도인으로 바뀐 후에는 여생을 ‘어린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주님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


# 우리가 기억할 세 가지

우리는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우리가 영적으로 태어날 때 성령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거하신다. 둘째,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셋째, 죄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슬프게 하거나 그분의 능력의 불을 끈다면 그분의 능력은 더 이상 우리 안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성령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고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의(義)를 갈망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 5:6)라고 말씀하셨다.


# 감정이 아닌 믿음으로 살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엡 5:18-20).

육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억지로 기쁨과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으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 속에서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및 절제가 나타나게 된다.

내용 발췌 = 기독교교양 : 빌 브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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