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교양

우리는 누구나 영적 메마름의 시기를 지나간다

영적으로 메마른 순간이 찾아올 때, 그리스도인은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육체는 고사하고 마음마저 기뻐 노래하지 못한다. 사실 모든 즐거운 느낌이 멀어 보이며, 즐거운 느낌을 가지려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죽은 것처럼 보인다. 성경을 읽지만, 성경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의 덕목들이 따분하고 마음에 끌리지도 않는다. 양심은 무감각해지고 무디어진다.

그러나 주변 세계는 그의 사랑이 필요하며 그의 사랑을 기대한다. 내 안에는 철저한 공허와 메마름만 느껴질 때 절망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영적 메마름의 원인

첫째, 죄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분명히 어기고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태도가 영적 메마름을 초래할 때가 있다. 영적 메마름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가까이하기를 갈망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려고 온 신경을 집중하는 매우 양심적이고 진지한 그리스도인일 때가 많다.

둘째, 영적 영양 결핍과 활동 부족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도록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은 육신의 건강을 위해 매일 식사를 하는 것만큼이나 그의 영적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셋째, 과식과 과로 때문이다. 우리는 최고의 종교적 체험을 한 후에 영적 메마름으로 고통당할 때가 많다. 영적 과로는 한 사람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예배 자체에 감동이 없어지는 것처럼, 어린 시절에 강요된 종교교육을 받을 경우, 어른이 된 후 영적인 문제들에 무관심해질 수 있다.

넷째,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몸과 영은 단일체다. 따라서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의 원인일 수 있다. 몸을 돌보지 않으면 심리적 건강이 영향을 받고 영적 ‘가뭄’이 일어날 수 있다.

다섯째, 균형상실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해서 우리가 한 부분을 이루는 창조의 질서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일과 휴식 사이의 균형 위에 세워져 있다.

이런 면에서 절망적이게도 우리의 삶은 균형을 잃을 때가 많다. 우리는 지나치게 일을 많이 하며 이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에 두신 이러한 리듬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창의적인 영적 능력을 잃을 것이다.


# 영적 메마름의 극복

첫째, 용서가 필요하다. 분명한 죄를 범했으며 죄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면 고백과 용서에 대한 새로운 확신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욥이 당하는 고통의 원인은 죄에 있는 게 틀림없다고 주장했던 친구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훈련과 책임이 필요하다. 영양 부족이 원인이라면, 개인의 경건 생활에 대한 새로운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간접적인 설교와 경건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좋으며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접 경험을 통해 사는 법,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를 통해 영적 양식을 스스로 파내는 법을 더 많이 배울 필요가 있다.

셋째, 금식이 필요하다. 영적 메마름이 과식 때문이라면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성경을 더 오래 연구하며, 교회 모임에 더 많이 참석하라고 말하는 것은 당뇨병 환자에게 설탕을 더 많이 먹으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넷째, 식사 조절과 운동이 필요하다. 신체적인 면을 소홀히 한 경우, 수면과 휴식이 첫 번째 해답이다. 식사도 중요하다. 식사는 과일과 채소를 더 많이 먹고 하이킹과 수영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소화를 잘 시키며, 햇볕을 쬐는 게 우리의 영적 건강에 설교보다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섯째, 즐거운 여유가 필요하다. 생활의 새로운 균형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일뿐 아니라 스케줄까지 완전히 다시 짜야 할 것이며 생활방식도 바꿔야 할 것이다. 나는 피로를 풀고 여가를 즐기는 시간을 내고 있는가? 즐거운 여유가 우리 주님에게는 경건한 심각함보다 더 큰 증거일 것이다.

루터나 파스칼이나 키에르케고르처럼 철저한 종교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누구나 영적 메마름의 시기를 헤쳐나가야 했으며, 때로는 절망에 이르기도 했다.

산이 높아야 골짜기가 깊듯이, 이러한 고통의 강도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의 강도와 직접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마름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실제로는 즐겁지 않은데 즐거운 척하면서 영적 메마름을 숨기려 할 필요가 없다.

영적 메마름 때문에 겪는 고통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표시일 것이다. 모든 사막에는 새로운 모험에 대한 약속이 포함되어 있다.

내용 발췌 = 기독교 교양 : 월터 트로비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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