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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비의 행복문답

부부를 위한 협상의 법칙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부모님이랑 잠깐 같이 사는 게 어때? 애들이 너무 어린데 내가 당신이 원하는 만큼 도움을 주지 못하잖아. 부모님이 애들을 좀 봐주시면 당신도 여유가 좀 생길거고. 경제적인 부담도 덜하고…. 어떻게 생각해?” 남편이 물었다.

“싫어.” 아내가 대답했다.

“뭐가 싫은데?”

“지난번에도 말했잖아. 그건 나를 위한 게 아니라 당신을 위한 거라고.”

“왜 날 위한거야? 나도 부모님하고 살면 불편해. 당신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이런 저런 방법을 생각해보는거잖아.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럼 무슨 좋은 방법 있어? 힘들다고 말만 하지 말고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말해봐.”

“이제 힘들어하지도 말라는 거네. 알겠어. 혼자 잘 해볼게.”

“여보,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을 도와주려고 하는거잖아. 최선을 다해서 좋은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는거라고.”

“정말 좋은 방법을 찾고 싶으면 정말로 나를 위해봐. 당신에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방법으로. 당신이 생각한 방식은 실망스러워, 진짜.”


남편은 마음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모두 자기 잘못같이 느껴진다. 아내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혼자 아이를 삼 년 동안 키웠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다시 뱃속에 둘째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남편의 회사는 출장이 많은 편이다. 일주일에 이틀 삼일은 출장을 간다. 거의 집에서 잠만 자거나 아니면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아내의 불평이 점점 심해졌다.

처음에는 아내가 힘들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의 불평이 점점 인신공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생각했다.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아내의 태도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날부터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각은 곧 정리되었다.

첫째, 아내 옆에 내가 있어줄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 부모님께 부탁을 해보자.

둘째, 시댁에 들어가 사는 것에 대해 아내가 힘들어할 수 있다. 그러므로 기한을 정하자. 그 기한은 첫 아이가 어린이집에 들어갈 시점, 둘째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젖이라도 뗀 시점으로 한다.

셋째, 아내가 선택할 수 있게 하자. 시댁에 들어가 사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클 것이다. 시댁에서 사는 부담과 현재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비교하고 나서 무엇이 나은지 고려해서 결정하게 하자. 아내가 무엇을 결정하든 따른다.

넷째, 만일 아내가 거절하면 다른 방법을 찾는다.

남편은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아내에게 말했다. 남편 자신이 이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 아내를 위해 최선이 무엇일까 깊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아내가 알아주기를 바랬다.

예상과 달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아내의 반응은 비난과 무시였다. 남편은 생각지도 못한 아내의 반응에 놀랐다. 의견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인신공격을 하다니…. 남편은 화가 났다.


아내는 남편의 방법이 한심했다. 남편은 늘 그런 식이다. 자기가 희생하고 도와줄 생각은 안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다고 말하면 공감해주고 도와주면 된다. 그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생각한다. 자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으려고 생각하니까 멀리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생각할수록 아내의 감정은 복잡했다.

왜 자신이 책임지고 희생하지 않으려고 할까?
가정을 돌보는 일을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내 남편에게 가장 우선되는 가치가 뭘까?
정말 날 사랑하는 것일까?

남편에게 정말 원하는 것을 말해주고 싶지만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것까지 다 말해줘야 하나?’ 남편이 정말 날 사랑한다면 내 상황을 이해해주고 있다면 알아서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무딘 것인지, 아니면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혼란스런 상황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언젠가는 남편이 ‘내 마음을 알아 주겠지, 스스로 알아서 하는 날이 오겠지’ 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화가 치밀어 남편을 무시하는 말을 하게 된다. ‘정말 내 마음을 이렇게까지 몰라주는 것이 가능할까?’ 아내의 한숨은 깊어 간다.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야기를 듣고 이 부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H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다. H는 공부에 대한 의욕 넘친다. 항상 100점을 받고 싶어한다. 시험이 아무리 어려워도 밤을 새서 공부해 100점을 맞고 싶은 것이 H의 성향이다.

W는 H의 영어 선생님이다. W는 학생들 사이에서 시험을 어렵게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W의 시험에서 100점을 맞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다. 시험 범위가 넓기도 하고 문제 유형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W는 생각했다. 평소 수업 시간에 집중한 학생이라면 자기 과목에서 100점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수업 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100점을 줄 수 없다. W는 다른 교사와 다르다. 시험 직전에 출제될 문제에 대해 전혀 암시해주지 않는다. 그건 학생들을 망치는 일이다.

W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평소 수업 태도, 둘째도 평소 수업 태도이다. 수업을 유심히 들으면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무엇이 출제될지 알 수 있다는 신념은 확고했다.

H는 W 선생님이 너무 좋았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W 선생님의 과목은 만점을 받고 싶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다른 수업 시간에는 집중해서 수업을 들으면 이해가 되었는데 W의 수업은 그렇지 않았다. 수업을 듣다 보면 자꾸 W 선생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 설레고 떨리고 신비롭기도 했다.

W의 수업을 잘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수업이 들어오지 않으니 큰일이었다. W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선배들을 통해서 W가 출제하는 문제가 너무 어렵다는 소문을 들었다. 시험 범위가 없고, 출제하는 방식도 예상할 수 없다고 했다.

수업 시간에 배운 개념을 바탕으로 출제 범위 없이 문제를 낸다는 것이다. H는 걱정되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만의 공부법으로 최선을 다했다.

시험 당일까지 밤을 세워 공부했다. 철저히 외우고 또 외웠다. 시험 당일이 되었다. H의 점수는 50점, 그는 좌절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점수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항상 100점을 받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H가 다시 100점을 맞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여기서, H가 열심히 시험 공부했다는 사실은 의심하지 말자. 100점을 맞고 싶은 욕구를 충분히 인정하고 시작하자. 그렇다면 H가 시험을 망친 원인은 무엇일까?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첫째, H의 공부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H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100점을 맞게 해준 자신 만의 공부법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한 것을 다른 사교육의 힘을 빌려서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교재를 활용해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W 선생님은 철저히 수업 시간에 중요하다는 신호를 보낸 문제 만을 출제한다. 다른 교재를 통해 보충할 수 없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로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할 수 없다.

H가 100점을 맞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다. 철저히 W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수업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둘째, W의 문제 출제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W 선생님의 문제 출제 방식은 주관적이고 광범위하다. 한 학기 동안 들은 수업에 대해 학생들이 100 퍼센트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수업 시간에 이해하지 못한 것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스스로 공부하고 깨우칠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주어진 텍스트, 즉 교과서가 필요하다. 교과서를 정하고 나면 범위를 알려줘야 한다. 1과부터 3과에서 문제가 출제된다고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정당한 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

교과서도 없고 범위도 없는 상태에서 수업 시간에 집중하면 다 깨우치고 알게 될 것이라는 신념은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W는 출제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교과서를 정한다. 그리고, 범위를 알려준다. 그 안에서 문제가 나오니 철저히 준비하라고 말해줄 수 있다.

결론은 단순하다.

W는 학생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정된 교과서를 선정하고 범위를 알려주고 그 안에서 문제를 낸다. 

H는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해서 지정된 교과서를 가지고 해당 범위의 내용을 철저히 공부한다. 다시 앞서 말한 부부의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남편이 아내에게 단번에 거절당한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가 낸 문제를 읽었다. 그리고, 출제자의 의도를 생략한 채 바로 답을 찾기 시작했다. 객관식이 아닌 서술형 문제이기 때문에 출제자의 의도를 모른다면 절대로 문제를 풀 수 없다.

얼마나 열심히 그 답을 찾기 위해 공부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정답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를 읽고 나서 문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손을 들고 질문해야 한다.

문제를 풀기 전에 이 문제를 낸 의도가 무엇인지 출제자에게 물어봐야 정답을 맞출 수 있다. 질문하지 않은채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답을 말하면 여전히 낙제를 면하지 못한다. 정답을 맞추고 싶다면, 아내에게 질문하라.

“여보, 당신이 요즘 너무 힘들어 보여. 첫째를 키우는 것도 힘든데 둘째를 가졌잖아. 나도 일주일 중 몇 일은 없고. 당신 혼자 이 상황을 견디게 하는게 너무 미안해. 당신을 위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좋은 방법 없을까? 당신이 이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거든. 좋은 의견이 있으면 말해줘. 내가 힘껏 도울게.”

남편이여, 행동하기 전에 질문하라.
당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아내의 역할도 중요하다. 남편이 그렇게 묻는다 해도 아내의 마음에는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 신뢰를 쌓지 못했던 남편이 아내를 위한다고 하면서 아내에게 좋은 방법에 대해 묻는다면 아내는 남편의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평소 수업 태도가 좋지 않았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좋은 점수를 받게 해주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평소 수업 태도가 100퍼센트 좋은 학생은 드물다. 평소 수업 태도를 논할 때 언제나 약자는 학생이다. 완벽한 학생은 세상에 없다. 수업 태도가 나쁘다고 말하면 모든 학생은 변명한다.

일단은 평소 수업 태도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시험이 다가왔다면 일단 그 시험을 통해 지난 학기 동안 배운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정답을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남편의 진심을 믿자.

아내도 알고 있다. 남편이 회사를 그만 둘 수 없다는 사실, 남편이 아무리 열심히 도와줘도 아내가 감당하는 육아와 가사 일이 온전히 자기 몫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내가 더 힘들어질 때는 남편이 전혀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이다.

남편의 엉뚱한 제안, 틀린 정답은 아내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한다. 믿는 남편에 발등 밟힌 것이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을 한 번에 풀어내는 명쾌한 정답이 아니다. 사실, 정답은 없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공감과 배려이다.

남편에게 아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말하자. 알려주지 않으면 열심히 남편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상한 답을 찾아낸다. 강요한다. 반복한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낸다.

아내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 전에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다. 아내 입장에서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자존심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생일 아침, 아내는 남편의 얼굴표정, 말 한 마디에 민감하다. 어제 저녁까지 아내의 생일에 대해 한 마디 언급하지 않은 남편이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남편이 아내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가 무엇일까, 아내는 남편이 일어날 때까지 궁금하다.

남편이 눈을 뜨자마자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면 일단 낙제는 면한다. 그러나,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상적인 말이나 행동을 하면 아내의 마음은 무너진다. 아내의 입 밖으로, “여보, 나 오늘 생일이야”라고 말하면 그 상황은 아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비참한 상황이다.

하루 전날 저녁, 아내는 왜 남편에게 “여보, 나 내일 생일이야. 지난 번에 내가 가고 싶다고 한 레스토랑에서 내가 갖고 싶다고 말한 그 선물 사줘”라는 말을 하지 못할까?

아내도 여자다. 자존심 때문에 이런 말하기 힘들다. 평소에 내가 먹고 싶다는 것과 가지고 싶다는 것을 언뜻 말했으니 남편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내의 치명적인 실수이다. 남편은 절대 모른다. 만일 당신의 남편이 알고 있다면, 그 남편을 업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라. 지구에 몇 안되는 남자이다.

아내가 처한 상황에 대해서 남편은 공감할 수 있다. 단, 아내가 알려주는 만큼 공감한다. 나머지는 다 남편의 추측에 불과하다.

비난과 무시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 도와 달라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아내가 그 정도로 힘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랄 수도 있다. 차분하게 원하는 것을 말하자. 자존심이 상해도 그렇게 하자.

그래야 남편이 아내가 원하는 답을 정확하게 찾는다. 남편이 정답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하게 되면 보람을 느낀다.

남편은 정답을 모른다. 추측할 뿐이다.
아내여, 의심과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정답을 공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