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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낭독회

다 셀 수 없는 수만 가지 감사들(옥덕자) 中 6장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을 (낭독 by 아드리엘)

감사 - 엄청난 능력과 큰 복 보장!

목적을 위한 기도를 바느질로 비유한다면, 말씀 없는 기도는 열심히 바느질을 했지만 실을 꿰지 않은 재봉틀질과 같다.
또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감사가 없으면, 열심히 바느질한 제품에 실이 다 터지는 것과 같다.
감사는 믿음을 든든히 세워 나가고, 기도를 든든히 세워 나간다.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없고 내 힘으로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지나간 일도 현재 일도 앞으로의 소망도 다 주님의 은혜다.
우리가 아무리 은혜와 응답을 받고 큰 복을 받아도 감사가 없으면 툭툭 터지는 실과 같다. 잘 될 때 감사하면 믿음이 더 든든히 세워지고 어려울 때 감사하면 이겨내는 보약이 된다.
누구나 다 안다고 쉽게 여기고 넘어갈 수 있지만 "감사하라"라는 계명은 엄청난 능력과 축복이 보장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을 가볍게 여기고 실천을 하지 않아 엄청난 비밀과 사랑과 능력, 축복을 흘려보내고 마귀에서 뺏기고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문제를 다스리지 못하고 사탄을 다스리지 못해 또 세상과 물질과 가난과 질병과 실패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해 그토록 방황하고 탄식하며 절규하면서 몸부림쳤다. 이 방법 저 방법 다 찾아보고 산으로 바다로 기도원으로 찾아가 부르짖었지만, 문제 자체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기지 못하는 이것이 나를 죽이고 힘들게 했다. 아무리 말씀을 읽어도 기도를 해도 찬송을 해도 그때뿐이었다. 그러나 감사를 시작할 때 꽁꽁 닫히고 얼어 붙었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감사를 선포하며 매사에 감사할 때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감사가 없을 때는 심령이 메말랐지만 감사가 터질 때 심령이 물댄동산이 되기 시작했다.
"범사에 감사하라!"
짧은 구절이지만 기적의 위력이 나타난다. 감사로 철저히 나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육의 소욕을 이기고, 인본주의를 이기고, 사탄을 이기게 됨을 체험하며 감사 기도 노트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기도가 되었다. 그래서 이 감사노트를 책으로 묶어 내가 죽기 전에 자녀들에게 삶의 교훈으로 물려주고 싶었다.
자자손손 사명을 붙잡고 살아갈 때 문제 앞에 감사로 이기고,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복을 누리며 늘 감사로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삶이 산제사가 되기를 교훈으로, 유언으로,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이것으로 책을 내라"고 하셨다. 자신이 없고 한편으론 부끄럽고 당황스러웠지만 성령께서 자녀에게 주는 마음으로 쓰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 감사 기도를 책으로 내게 되었다.

▒▒ 저자 : 옥덕자 ▒▒
저자는 현재 울산에서 예심교회(예장합동/ 담임 정명락 목사) 사모이자 에스더 수양관 원장 그리고 푸른삶방문요양센터 원장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
한때는 길거리의 돌멩이, 잡초보다도 못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죽음까지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오직 예수, 오직 기도, 오직 감사만을 붙들고 주님께 매달렸다.

암을 포함한 여러 가지 중증 질병과 사업 실패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 등을 겪으며 말씀, 찬양, 기도만이 하루하루를 이길 수 있게 해준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에스더 수양관 원장으로 오직 예수께만 미치고 싶어 말씀, 회개, 기도, 감사, 영혼구령을 외치고 있다.

"감사 없는 신앙생활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며 "범사에 감사가 묻어날 때 신앙생활이 행복하고 살맛난다. 우리 모두 기죽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만 하자"고 말하는 옥 원장은 "죽을 것처럼 아프고 힘들어도 결코 기도를 쉴 수는 없다. 관속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기도와 함께 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에스더 수양관을 24시간 365일, 매일 매시간 기도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누구나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성령의 불이 붙을 수 있는 크리스천을 양성하는 곳으로 키우는 것이 삶의 비전"이라고 한다.

좋아하는 성구는 데살로니가 5장 16~18절, 갈라디아서 2장 20절로, 경남 거제도에서 1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옥덕자 원장은 결혼 전부터 둘째를 낳은 후까지 15년 정도 은행원으로 재직했으며 슬하에 3남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