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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히스토리

[종교개혁 히스토리 3] 츠빙글리의 타협 없는 순결

올해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교회 역사학적 측면에서 아주 의미 있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이 지금의 내 신앙생활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종교개혁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종교개혁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함께 살펴보러 가시죵


종교개혁의 두 번째 주자로 꼽히는 스위스 태생의 울리히 츠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

츠빙글리는 주로 취리히에서 목회를 했다. 그곳에서 가장 큰 교회인 그로스뮌스터교회의 목사가 되었고,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설교하면서 활동한 관계로 그가 사역한 교회가 '종교개혁의 어머니교회'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츠빙글리는 교회의 유일한 권위는 성경 말씀뿐이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루터가 95개의 논제를 비텐베르크대학 성당 문 앞에 붙이는 걸로 종교개혁을 시작했다면, 츠빙글리의 개혁은 성경적인 강해설교를 강단에서 토해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기억할 것은, 츠빙글리의 개혁이 루터의 개혁의 결과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의 개혁은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차량처럼 하나님의 섭리로 독일과 스위스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이었다.

1523년, 600여 명의 청중들 앞에서 최초로 공개적인 가톨릭교회 논박이 벌어졌다. 츠빙글리는 자신의 신학을 담은 67개 논지를 작성해서 발표한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성경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 위에 있다. 성만찬은 희생의 제사가 아니라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

츠빙글리는 또한 인간의 선행이나, 성인 시스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성직자 개념을 거부했다.


츠빙글리의 예배개혁

츠빙글리는 루터보다 훨씬 더 성경 중심의 원칙주의자였다. 철저히 가톨릭의 잔재 청산을 밀어 붙였다. 그는 성경이 명하지 않은 것을 모두 거부했다.

"성경이 정확하게 하라고 명하지 않으면, 우린 해선 안 된다."

[caption id="attachment_44117" align="alignnone" width="1000"] 그림 같이 아름다운 도시 취리히[/caption]

츠빙글리와 추종자들은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시면서 인위적인 에배를 금하신 것에 주목했다. 츠빙글리는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따라 성당의 촛대, 성자상, 음악, 그림, 성직자 예복 등을 다 제거했다.

츠빙글리와 칼빈 같은 종교개혁가들은 그런 가톨릭의 잔재들을 예배당에서 깨끗이 제거하고, 초대교회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본격적인 예배 개혁을 단행했다.

예배 개혁은 찬양의 개혁을 가져왔다. 성가대 중심으로 찬송을 하던 로마 가톨릭과 달리 종교개혁자들은 몇 사람의 전문 음악인들이 드리는 찬송이 아닌 모든 성도들이 드리는 찬송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주장했다. 회중 찬양 중심으로 변화된 것이다.


정교일치 사상과 청교도 정신

그는 교회와 국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의로운 교회와 사회를 구축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평생의 과제로 여겼다.

[caption id="attachment_44118" align="aligncenter" width="1000"] 그로스뮌스터교회[/caption]

츠빙글리가 주도한 취리히의 종교개혁은 한 세대 후, 칼빈의 제네바 종교개혁으로 가는 길을 예비해주었다.

성경말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 같은 요소와 가톨릭 잔재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개혁하려는 정신, 또 교회뿐 아니라 국가 시스템까지도 같이 거룩하게 개혁하려는 정신, 훗날 영국에서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퓨리탄'(Puritan)이라고 불렀는데 '순결하게 한다'라는 영어 단어에서 왔다.

'청교도'라는 이름은 종교개혁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영국 교회를 정화하고 사회까지 정화하려고 기울인 노력에서 나왔다.

훗날,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간 영국의 청교도들은 츠빙글리를 롤모델로 하여 그의 사상을 그대로 도입하여 기독교 국가 건설을 추진한다.


츠빙글리와 그의 정신을 전수한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을 다시 한 번 개혁했다고 할 정도로 타협 없는 순결을 강조했다.

각 개인의 중생의 체험을 중시하고, 그것을 교회 공동체 앞에서 간증할 수 있어야 교회의 일월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caption id="attachment_44119" align="alignnone" width="669"] 성경책과 칼을 들고 있는 츠빙글리 동상[/caption]

그들에 의해서 설교학의 중요성, 성경 중심주의의 신앙, 주일성수와 십일조, 건전한 크리스천 노동 철학, 엄격한 교회 치리 체제가 확고하게 서게 되었다.

"500년 전, 그 무서운 가톨릭의 악습을 타파하면서 오직 말씀으로 타협하지 않는 순결을 부르짖었던 츠빙글리와 청교도 정신을 오늘날 우리도 배우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예수 한국, 그리스도의 계절을 꿈꾸게 하옵소서!"

내용 발췌 = 한홍 목사의 종교개혁 히스토리
사진 = 강신욱, 규장, 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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