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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비의 행복문답

내가 아픈 만큼 당신도 아프기 바래

“언제까지 그 이야기를 계속할거야?” 남편이 말했다.
“그게 쉽게 잊혀지진 않지.” 아내가 말했다.

“다 지난 일이잖아. 지금은 당신한테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래도 소용없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 이미 지난 일이잖아.”
“당신한테는 지난 일이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아니야. 내가 그 말을 할 때마다 나한테 사과해.”

“사과하잖아. 벌써 백 번도 넘게 사과한 일이야.”

“진심으로 사과한 적은 한 번도 없잖아.”

“여보, 진심이라고.”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내가 잔소리한다고 화낼 수는 없지.”
“그럼 나는 벙어리로 살면 되겠네. 옛날에 실수한 거 하나로 평생 죽은 듯이 살라는 거지?”

“당신이 반성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그러니까 당신은 말로만 사과한 거야.”
“주말에 집안일 도와주지 않는 거 하고 그때 일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내가 이해가 되야 사과를 하지. 난 이해가 안가. 그 실수 하나 때문에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냐고? 불가능하잖아.”

“당신 힘들다고 말하는 거야? 아직도 멀었다.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당신은 힘들다고 하면 안 돼. 양심 있으면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미치겠다. 그 말 평생 계속해. 그때마다 심장이 찢어질 듯 아프니까. 다시 돌아왔는데 죽이지 못해 안달이지. 당신이 날 서서히 죽이는 거야.”

“내가 당신을 죽여? 당신이 먼저 날 죽인 거야. 난 그때 죽었어. 내가 사는 게 지금 사는 건 줄 알아? 사는게 의미 없다고.”
“지금 내 나름 잘하고 있잖아.”

“그건 당신 생각이지. 그 일은 되돌릴 수 없어. 당신도 느끼게 해 줄 거야.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내가 아픈 만큼 당신도 아파야 해.”


결혼 초, 남편은 부부가 함께 모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시작부터 어려웠다. 아내가 모은 돈을 남편이 조금씩 가져다 썼다. 마지막 남은 돈까지 다 쓰고 부도가 났다.

남편은 지방에 내려가 숨었다. 아내는 집에 혼자 남아 험한 일을 다 겪었다. 돌 갓 지난 아들이 없었다면 남편을 버리고 도망갔을 것이다. 아내는 육아휴직을 끝내고 직장으로 복귀했다.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빚을 갚았다.

5년 정도 지나고 빚을 거의 갚았을 때,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을 받아 준 이유는 하나다. 아이 때문이다. 아빠 없는 아이로 키울 수 없었다. 남편에 대한 상처가 사라지지 않은 채, 함께 살았다.

돌아온 남편은 열심히 노력했다. 죽도록 일했다. 사업은 성장했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 아내와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두 번 다시 가족에게 아픔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관계를 개선하고 싶었다.

아내에게 눈물로 사과했다. 아내 표정은 냉담했다.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며 살아왔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아내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남편은 점점 지쳐갔다. 아내는 남편에게 관심 없었다. 생활비를 넉넉하게 갖다 줘도 아내는 고맙지 않았다.

남편은 참았다. 인내심이 바닥났다. 아내와 한바탕 싸웠다. 남편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다시 노력해서 이룬 삶이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아내는 녹음기 같아요.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아내는 십 년 전 이야기를 하죠. 제가 잘못한 건 알아요. 두 번 다시 아내 옆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아내는 믿어주지 않아요. 평생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겁니다.”

남편은 더 이상 과거의 남편이 아니다. 왜 아내는 여전히 남편의 변화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을까? 지금의 남편은 경제적으로 무능하지 않다.

아내의 감정은 십 년 전 그대로 머물러 있다. 남편이 어떤 노력을 해도 아내가 반응하지 않는다.

부부가 살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배우자의 외도, 고부갈등, 경제적인 문제, 자녀교육과 같은 다양한 갈등이 일어난다.

한 쪽 배우자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배우자에게 일방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 그 상처로 인해 배우자는 완전히 무너진다.

문제가 해결된 이후에도, 부부의 관계는 두 사람의 기대만큼 극적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상처를 주고받은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상처 준 사람은 죄책감에 고통받는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 그 자체로 고통받는다.

돌아온 남편은 용서받은 사람처럼 행동한다. 아내는 남편의 당당한 행동을 보고 못마땅하다. 남편이 다시 돌아왔다고 아내가 즉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은 모른다. 지난 일이라 생각한다. 앞날만 걱정한다. 아내는 남편이 과거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원한다. 혼자 견딘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남편이 알아주기 바랐다.

남편은 앞만 보고 달렸다. 가정이 안정되는 것이 최고의 보상이라 생각했다. 남편은 미래에, 아내는 과거에 갇힌 것이다.

아내에게는 두려움이 있다. 남편을 용서해버리면, 남편에게 온전한 돌봄을 받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다. 남은 카드 한 장을 끝까지 쥐게 된다. 아내는 생각한다. 마지막 남은 카드를 쓰고 나면 자신의 존재는 다른 것에 밀려날지 모른다고.

남편은 답답하다. 아내가 용서하지 않는다. 남편은 생각한다. 아내가 카드를 내려놓으면 공평하다. 카드가 없으니까 불리하다. 아내가 잘못한 상황에서도 카드를 내밀면 무조건 사과해야 한다.

남편은 아내가 움켜쥐고 있는 카드에 집중한 나머지 자신에게 또 다른 카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내 먼저 카드를 버리라고 하면 두려워서 못 버린다.


남편 먼저 카드를 버려야 한다. 카드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버릴 수 없다. 속주머니 깊은 곳을 뒤져보면 카드가 있다.

남편의 카드에는 “경제적 안정이 먼저”라고 쓰여 있다. 남편은 삶의 안정을 위해서, 또다시 아내를 방치한 것이다. 그 카드를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내 앞에서 그 카드를 찢어버리자.

카드 없이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아내는, 자신이 가진 카드가 철 지난 복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내가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카드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기 위해서, 남편의 절대적인 사랑이 필요하다. 카드 없이 남편에게 사랑받기를 요구해도, 남편이 아내를 변함없이 사랑해준다면 아내는 카드를 버린다.

남편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제 적당히 하고 아내에게 돌아와라. 아내에게 원하는 것을 직접 물어보라. 아내의 숨소리를 들어보기를 바란다.

아내 가슴에 귀를 대고 그녀의 심장 소리를 들어보라.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을 아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가? 아내는 당신이 쓴 대본 속 배우가 아니다.

당신 쓴 대본을 아내에게 던져주는 이상,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아내가 쓴 대본을 보고 당신이 연기하라. 아내가 당신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뀐다. 그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하는 남편에게 묻고 싶다.

지금이 더 힘들지 않은가. 아무리 고생해도 아내가 알아주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꿔보는 것은 어떤가. 어차피 고생한다. 아내가 인정해줄 때 모든 고생을 잊고 함박웃음 짓는 당신을 나는 안다.

아내에게 부탁하고 싶다. 남편에게 맞추기 어려운 문제를 내지 않았으면 한다. 힌트를 분명하게 주든지, 정답을 공개하기 바란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남편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정확히 요구하지 않고 남편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바란다면, 남편은 답답하다.

출제자의 의도를 모른 채 전과목 전범위를 공부하는 학생은 보나마나 시험에서 떨어진다. 시험 범위를 정확히 알고, 출제자의 의도를 분명히 아는 학생은 언제나 시험에 합격한다.

남편을 시험에서 떨어뜨리는 것도 아내이고, 합격시키는 것도 아내이다. 아내여, 남편을 합격시켜 줄 방법을 찾으라.

웃어라, 부부.
행복해라, 부부.
그대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