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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골방에서 나올 때 얼굴이 환히 빛났다.

그는 기도를 그의 가장 중요한 일과로 생각했다.

 2017-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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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 4월 2일(월요일) 오후 4시, 브리스틀의 거리에서 존 웨슬리는 역사적인 야외설교를 시작한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부끄럽고 천하게 될 각오를 하고 그때 거리를 메운 3천 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좋은 소식을 선포했다.”

그때 웨슬리가 택한 성경말씀이 바로 이사야서 61장 1-3절이었다. 특히 1절 말씀은 앞으로 펼쳐질 웨슬리 인생 전체의 사역을 상징하는 핵심 주제 말씀이 되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사 61 1-3

이날 그의 야외설교를 들은 3천 명의 군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웨슬리는 이에 큰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영국 전역을 휩쓴 웨슬리의 감리교 부흥운동에 불이 붙었다.

그때부터 존 웨슬리는 평생 야외 집회만 주로 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영혼을 쏟아놓는 중생을 체험했다. 특히 산업도시 브리스틀에서 사역의 엄청난 열매가 있었다. 브리스틀은 아주 급성장하는 항구 도시였고, 당시 영국 서부 해안 지역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도시는 가난한 노동자 가족들과 불량배들과 창녀들로 넘쳐났다. 너무 위험하고 살벌한 곳이었다. 그러나 이 험한 도시에서 작고 왜소한 존 웨슬리가 놀라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엄청난 열매를 얻었던 것이다.

당시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라. 웨슬리는 아버지 때부터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영국국교회의 목사였다. 게다가 영국 젊은이들의 1퍼센트도 대학을 못 가던 시절, 그는 영국 최고의 명문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했다. 브리스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까이서 옥스퍼드 대학생을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18세기 영국에서 전통과 관습은 너무나 중요했다. 반드시 따라야 할 사회적 규범과 틀이 있었다. 특히 교회에 관련된 관습은 더욱 엄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공식적 장소는 국교회당밖에 없었다. 침례교도, 회중교도, 그리고 장로교도들은 예배하기 위해서 특별 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가톨릭은 가장 심한 규제를 받았다. 또한 당시 깰 수 없던 종교적 관습은 설교는 주일날 행해야 된다는 것이었고, 반드시 교회당 안에서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예외 상황은 이단시되었다. 그러므로 야외에서 설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웨슬리는 이 전무후무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웨슬리의 야외설교는 특히 도시의 노동자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그들은 원래 농사짓는 시골에서 도시로 직장을 찾아 이주해온 사람들이었다). 익숙한 전통적 삶에서 삭막한 도시 공장 생활로 바뀌면서 피폐해진 그들에게 옥스퍼드를 나온 엘리트 영국국교회 목사이면서 자신들이 있는 야외로 와서 설교하는 웨슬리의 설교는 감동적이었다.

웨슬리는 가히 18세기 영국판 사도 바울이라고 할 수 있었다. 1739년 순회전도설교 여행을 떠나기 전 웨슬리는 이렇게 썼다.

“온 세계가 나의 교구다(The world is my parish). … 누구든지 복음의 좋은 소식을 듣기 원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가서 복음 전하는 것을 나의 거룩한 의무로 알 것이다.”

그리고 웨슬리는 과연 그의 여생 동안 영국 전역에 복음을 전했고, 그의 사후에 그의 제자들은 전 세계를 밟으면서 전도했다. 당시 영국 내에는 아직 제대로 된 길이 많이 없었던 까닭에 여행하기가 극히 불편했지만, 웨슬리는 끊임없이 이동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런 놀라운 사역을 가능케한 것은

웨슬리는 말을 타고 6,70마일씩 여행하여, 54년 동안 매년 5천 마일을 말을 타고 여행했다. 이것은 총 29만 마일 정도로 지구를 12바퀴 돈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말을 타고 다니면서 그 긴 세월 동안 4만 번이 넘는 설교를 했는데, 이는 하루에 평균 두 번씩, 매주 평균 15번의 설교를 한 것이 된다(런던과 브리스틀에 있는 웨슬리 동상은 다 말 탄 모습이다).

그는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며칠 전 “예수 그리스도의 피 외에는 거룩함으로 가는 길이 없다”라고 말했고, 죽음에 임박하여서는 “호흡이 있는 동안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찬송을 남겼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주님 품에 안겼다.

웨슬리는 기도의 용사였다. 웨슬리는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응답하시는 일만 하신다”라고 했다. 매일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씩 기도 시간을 가졌다. 웨슬리의 동역자 한 사람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기도를 그의 가장 중요한 일과로 생각했다. 나는 그가 골방에서 나올 때 얼굴이 평온하다 못해 환히 빛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 지속적이고도 뜨거운 기도 습관이 그의 놀라운 사역을 가능케 했던 힘이었다.

 

† 말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 요한일서 2장 27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사도행전 1장 8절

† 기도
우리 믿음의 선배 요한 웨슬리의 불같은 열심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옵소서. 온 세상을 가슴에 안고 복음을 전했던 웨슬리처럼 우리도 살게 하옵소서!

† 적용과 결단
작은 방해물에도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는 모습들을 회개하며, 성령님께 의지하며 복음 전파에 더욱 힘쓰기로 결단해보세요.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