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런다고 당신이 처한 상황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면 적어도 당신 자신에게는 도움이 된다.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도는 가슴팍 한가운데 뭉쳐 있던 무엇인가를 없애거나 떨쳐버림으로써 우리의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기도는 우리의 심중을 시원하게 발산하거나 표출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실 기도의 가치와 능력은 기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도가 드려지는 바로 ‘그분’에게 있다.
여호사밧은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해 기도했다. 도움을 구하는 그의 간절한 절규는 단지 ‘위’를 향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기도를 실제로 들을 수 있으며 또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로 향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움을 호소할 작정으로 만들어낸 우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계시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찾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곰곰이 묵상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주신 하나님의 그 귀한 특징들을 낱낱이 열거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말을 건네는 하나님을 보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보게 되기를 원하신다.
이처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절대 헛수고가 아니요, 그저 기도의 요점에 도달하기 위한 견인력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도 아니다. 사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묵상하는 것 자체가 바로 기도의 요점의 일부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이 계시해주신 그대로의 하나님의 속성을 암송하고 낭송하며 보낸 시간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 믿음이 더욱 강해지고, 우리 믿음에 초점을 맞추게 되며, 하나님의 진리의 연료로 우리 믿음에 동력을 공급받게 되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우리는 기도하러 달려가야 한다. 그러나 단지 간청하기 위해서만 달려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묵상하는 것이 우리의 처지를 아뢰며 간청하는 것에 선행되어야 한다.
인생길의 괴로움에 봉착했을 때 하나님을 찾자. 그리고 그럴 때 우리가 찾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우리 자신에게 상기시키도록 하자.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타당한 자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에게 분명히 상기시켜주도록 하자. 그렇게 할 때 우리의 기도에 기대감이 가득 채워질 것이다.
- 베드로후서 1장 2,3절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호세아 6장 6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 잠언 9장 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