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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 갓피플 #90] 청년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드는 뉴스 - 장주영 기자

 

SNS에서 짱피디, 짱기자로 불리는 장주영 기자를 만났다. 그는 대구MBC, 연합뉴스 기자 출신이다. ‘이달의 기자상’을 5번이나 수상할 정도로 실력 있는 저널리스트로 알려지기도 했다.

‘나와 관련 없는 어려운 뉴스가 아닌, 청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쉽고 재밌는 뉴스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회사를 퇴사한 그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28초에 전국 날씨를 정리해주는 ‘이팔청춘 날씨뉴스’를 접하며 ‘밋밋한 날씨정보를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또한 그가 SNS에 올리는 뉴미디어에 관한 최신 전문 정보도 큰 도움이 되어 짱기자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짱기자의 첫인상은 여느 인터뷰 기사에서 접했던 ‘훤칠한 키와 훈훈한 외모, 수려한 언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속사포같이 말을 쏟아내며 열정이 가득 담긴 큰 액션도 온라인에서 접했던 짱기자의 영상과 다르지 않았다.

‘뉴미디어’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하며 후배들을 양성하면서 살아가고 싶다는 짱기자. 그와의 인터뷰가 뉴미디어에 관심 있는 젊은 크리스천들에게 인사이트로 와닿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밀레니얼 청년들이 세상 속의 빛과 소금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화를 옮겨본다.

* 밀레니얼 세대란?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로, 청소년 때부터 인터넷을 사용해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정보기술(IT)에 능통한 특징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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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mbc 기자로 입사하셨다가 퇴사하신 후 2015년부터 짱피디라는 브랜드를 론칭, 1인 미디어 동영상 뉴스를 만들기 시작하셨죠. 올해 초에 연합뉴스에 경력기자로 들어가셨다가 얼마 전에 다시 독립하셨더라고요.

네(웃음), 듣고 보니 이직을 자주 했네요. 돌이켜보면 각각의 회사에 입사하고 퇴사하게 된 시간은 하나의 큰 퍼즐을 맞추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이 돼요.

모두 잊지 못할 인도하심들이 있었는데요. mbc를 퇴사한 짱피디 시절의 이야기는 다른 인터뷰에 많으니 최근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올해 초 연합뉴스의 담당 부장님과 뉴미디어 관련 대화가 무척 잘 통해서 입사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요.

경력기자 1차 서류심사에서 다른 부장님들은 제 서류를 보고 탈락시키려고 했는데, 담당 부장님만 제 서류를 뽑아야겠다고 생각이 드셨다고 하더라고요.

경력기자 채용은 대부분 지인 추천으로 검증된 사람을 뽑아요. 저처럼 아는 지인이 없는데 뽑힌 건 저밖에 없더라고요.

제가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은 은혜라고 생각해요. 이런 은혜들은 말하자면 끝이 없어서 중략할게요.

한국적 상황에서 뉴미디어 콘텐츠를 계속 만들려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하는데요. 연합뉴스에 근무하며 비즈니스 모델의 기회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든든한 직장의 기자라는 계급장을 떼고 세상에 나갔을 때 쉽지 않았던 것 같던데, 처음에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나요?

저는 언젠가부턴가 10대, 20대 청년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들이 관심 있는 세계에 대해 제가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저는 게임을 좋아하지도 않고, 아프리카 TV 등의 인터넷 방송도 성향에 맞지 않아 보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대다수 젊은 청년들은 좋아하는 플랫폼이니 저도 배우고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알지 못하면 말할 수 없으니까요.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어요. 무척 힘들었죠. 지금은 식상해진 단어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MCN(Multi Channel Network)이라는 이야기가 처음 나오던 때라 정보가 전무했거든요. 몸으로 부딪히면서 현장에서 배워야만 했죠.

물론 지금은 MCN(Multi Contents Network)를 넘어 MPN(Multi Platform Network)까지 개념이 발전하고 있지만요. 만약 제가 기존 전통 언론사 안에만 머물러있었다면, 독자 중심으로 소통하는 콘텐츠, 뉴미디어의 문법과 문화에 대해 잘 알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기존 전통 레거시 조직에 근무하시는 분들의 다소 닫힌 생각들도 이해가 돼요.

주변에 예스맨들만 많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고 자연히 모르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구조적 문제도 있거든요.

SNS는 자신들의 플랫폼에서 독자들의 체류시간을 늘리기 위해, 내가 자주 본 사람 콘텐츠를 타임라인에 더 노출해주는 알고리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각이 점점 비슷한 사람만 모이게 되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 넘치니까요.

* 필터 버블이란?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이용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필터링 된 정보만 이용자에게 도달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페이스북에서 독자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열심히 소통하시던데요. 짱기자가 생각하는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건가요?

요즘 시대를 초연결(Hyper-Connected) 사회라고 부르죠.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어요. 언제든 연결되었다면 과거보다 덜 외로워야 하는데 우리는 더 외로워진 시대에 살고 있어요.

어느 새벽 아침, 기도하는데 문득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예수님이 제자들의 이름을 불러주셨던 것처럼 비록 얼굴도 모르는 온라인 공간이지만, 이름을 부르며 커뮤니케이션 한다면 그 분들이 간접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죠.

우리의 롤모델이신 예수님이 삭개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시며,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으셨으니까요.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 지점을 마케팅으로 이용해요. ‘SNS를 통해 우리 브랜드와 독자와의 인게이지먼트를 늘려 관여도를 증가시켜 충성 독자를 확보해 커머스까지 연결한다’라고 말하곤 하는데요.

조금은 비슷하게 꾸며낼 수 있겠지만 저는 그 바탕에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아가페(agape)적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독자와의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필레오(phileo)적 사랑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 초연결사회란? 사람과 사람, 사물, 사회가 인터넷, 스마트폰, 컴퓨터를 통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고 의사소통하는 세상.


하나님을 믿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뉴미디어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과거 이와 비슷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페이스북 리터러시'(아래 링크)라는 글에 녹여냈는데요.

리터러시(Literacy)는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뜻하는데, 요즘엔 정보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등 많은 의미로 확대 적용해 사회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일단 페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콘텐츠를 접할 때 가장 먼저 ‘왜 이런 콘텐츠를 올렸을까?’ 스스로 질문해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메시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 이 사람은 이런 말을 했을까?’ Why를 한번 더 생각해보는 거죠.

https://www.instagram.com/p/BV8Ll9mAHwg/?taken-by=jjangpd2

다소 귀찮을 수도 있는 이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가치관 때문이에요. 글, 그림, 음악 등 모든 콘텐츠에는 만든 사람의 가치관이 직,간접적으로 스며 들어있어요. 이를 '세계관'이라고도 말하죠.

‘당신의 현재 모습은 과거에 당신이 무엇을 보고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지가 만든 결과물이다’라는 말처럼 우리는 매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무수히 많은 콘텐츠를 접해요.

사람들은 내가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영양분을 꼼꼼히 따져서 비교 분석하잖아요. 내 배속에 들어가는 건 그렇게 신경 쓰면서 정작 무엇을 보고 듣는지는 대부분 잘 신경 쓰지 않아요. 무심코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이 우리의 영혼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데 말이죠.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따르면 우리 마음(Soul)의 구성요소는 크게 지식(Knowlege),감정(Emotion),의지(Willing) 3가지로 볼 수 있어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무엇을 보고 듣는지가 매우 중요하단 말이죠.

우리는 TV나 라디오 등 제한된 매체를 통해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던 올드 미디어 시대에서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뉴미디어의 홍수시대로 좋든 싫든 진입했어요.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세상이 점점 악해진다는 성경 말씀과 같죠. 자연스레 우리 마음 지키기는 더 어려워졌어요. 누군가 공유한 콘텐츠를 재밌고 웃기다고 무분별하게 섭취하지 말고, 분별하며 소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시대의 흐름도 알면 더 좋겠죠.

분별할 수 있는 관점이 생기려면 기도가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어야 해요. 저도 매일 새벽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사수하려고 노력하는데요.

피곤할 때도 많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새벽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 그 시간이 없다면 세상의 흐름을 분별할 수 있는 눈이 점점 사라지는 듯해서 말이죠. 아무리 좋은 정수기라도 필터를 교환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어느 순간 마실 수 없게 되는 물로 전락하니까요.


크리스천으로서 재밌고 좋은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재미는 크게 2가지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웃긴 'fun'과 재미와 의미까지 주는 'interesting'이 있어요. 저는 뉴미디어 시대에 범람하는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콘텐츠를 '뻔뻔한 콘텐츠'라고 명명하고 좋아하지 않아요. 물론 개인의 취향은 존중하지만요.

‘재미’라는 그럴듯한 허울과 클릭을 유발하기 위한 ‘자극적인’ 상업주의가 결탁해 만든 작은 콘텐츠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서서히 좀먹을 수도 있는 무서운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인격이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콘텐츠, 훗날 내 자녀에게 보여줘도 떳떳할 수 있는 콘텐츠, 재미와 의미를 함께 줄 수 있는 interesting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물론 콘텐츠를 꾸미는 형식과 포장은 시대에 따라 트렌디하게 변하면서 말이죠.

여기까지는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비슷한 거 같아요. 중요한 점은 다음 순간인데요. 세상에서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세미나를 가거나 책을 읽는 등 다양한 지식을 외부에서 내부로 습득해요.

물론 이 과정은 필요해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구원받은 크리스천이라면 출발점이 달라야 해요. 우리는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 날마다 나 자신이 십자가에 죽었음을 선포하며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주님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자아를 내어드려야 하잖아요.

크리에이티브의 근원인 주님이 제 안에 계시니 이 분이 세상에서 나타나실 수 있게 제가 통로로 사용 받는 거죠. 즉 하나님을 아직 모르는 분들은 끊임없는 외부의 자극으로 영감(靈感)을 받아 무언가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영감을 받아 외부에 이를 나타내는 게 다른 점 같아요.

외부에서 내부로가 아닌 내부에서 외부로라는 말이죠. 그러면 자연스레 세상을 사랑하게 돼요. 세상의 원어는 코스모스(cosmos), 에이온(aion) 2가지 뜻이 있는 거 아시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매우 사랑하시거든요. 물론 로마서 12장 2절에 나오는 ‘너희는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의 세상은 사랑하면 안 되겠죠. 사랑하되 사랑하지 않는 것, 이 줄타기가 참 중요한 듯해요.

본인의 삶에서 믿음이 성장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저는 ‘모태신앙’이었는데요. 대부분의 ‘못된신앙’의 아이들처럼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 교회를 다녔어요. (웃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20살 때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에 참석하면서였어요.

지금은 예수전도단이 여러 사건들로 휘청거리지만 그 당시는 전성기였거든요. 당시 구원 복음을 알게 됐어요. 하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님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알게 된 건 2007년 5월 1일, 친구 따라 놀러 간 온누리교회에서 손기철 장로님이 전하시는 십자가 복음을 들으면서부터였어요.

당시 저는 제자훈련으로 유명한 대형교회에서 제자반 받고 리더와, 리더 총무도 하며 섬겼는데 십자가의 부활 복음 메시지는 듣지 못했거든요. 죄인이라는 사실만 알고 새로운 피조물인 의인의 삶은 몰랐죠. 십자가의 반쪽만 경험한 셈이랄까요.

저 멀리 하늘 어딘가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내 안에 나와 함께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 부활 복음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넘쳤고 성령님을 깊이 만나게 됐어요.

장로교단에선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만 저는 그때의 경험 때문에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다르다는 신학적 의견에 동의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은혜를 누리며 경험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 거죠.


'젊은 사자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다",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는 삶의 신조가 무척 인상 깊었어요.

사실 위에 말씀하신 삶의 신조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로마서 6장 11절 말씀을 안 믿는 분들이 보더라도 거부감이 들지 않게 패러프레이징해서 정리한 거예요.

교회 버전으로 제 삶의 신조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의 복음’이 핵심이죠.

주님을 아직 모르는 청년들도 짱기자를 많이 따르는 거 같은데 뉴미디어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요?

저는 교회에서 대학부 리더를 할 때부터 선배들보다는 나이 어린 후배들이 많이 따르는 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그들의 언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는데요.

같은 말이라도 어떤 표현을 쓰느냐에 따라 그 집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지, 배척당할지 자연스레 결정되거든요. 전도 대상에 따라 다른 언어와 표현을 쓴 사도 바울이 그 점을 잘 알았죠.

사도 바울은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라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커뮤니케이션을 구사했어요. 뉴미디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청년들은 올드미디어가 아닌 뉴미디어의 언어를 사용하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청년들이 떠나고 있어서 위기를 느낀다고 말해요. 이 속도는 더욱 가속화되는 거 같아요.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봐서는 교회에 대안이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요즘 부모님들은 유튜브를 봐야 자녀들과 대화가 되는데, 자극적인 게 많으니까 일단 보지 말라고 말하고 대안 없이 단속만 시키는 게 현실이잖아요. 보지 말라고 했으면 다른 볼 것을 줘야 하는데 제재만 가하니 거짓말하고 속이면서 몰래 보는 거죠.

마치 과거 한국 교회에서 영화를 보면 타락한다고 생각해 영화관람을 죄악시 하고 금기시했던 것과 비슷한 현상처럼요.

밀레니얼 세대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깨달을 수 있게 눈높이를 맞춘 콘텐츠를 제작해 접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시도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물론 그것이 쉬운 작업은 아니죠.

무릎 꿇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지혜를 구해야 하니까요. 얼마 전 방한한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 유발 하라리도 두 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믿지 않는 분도 자신의 분야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2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하는데, 믿는 사람으로서 1시간을 겨우 채우는 제 기도 시간이 부끄럽더라고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루에 얼마나 기도하느냐는 질문에 “보통 2시간 정도 기도하고, 아주 바쁜 날은 3시간 정도 기도합니다”라는 대답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잖아요. 뉴미디어에 대해 마음을 받은 분들이 먼저 기도의 재단을 쌓아야 한다고 봐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한마디

이스라엘 열두 지파들은 각각 특징들이 있었는데요. 이 중에서 잇사갈 지파는 시대의 흐름을 분별하는 전략가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어요.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대상 12:32).

과거에는 복음을 전할 때 핍박을 피해 카타콤에서 숨고 일방적으로 때론 공격적으로 전했던 시대라면, 오늘날은 선지자 100명을 숨겨줬던 오바댜 같은 사람이 부드럽고 지혜롭게 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봐요.

레위 지파 같이 세상 일은 하지 않고 말씀만 전하며 사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런 분들은 12지파 중 단 한 지파에게만 맡겨진 소명이었거든요.

우리들 대부분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말씀을 삶으로 살아낼 소명을 받은 11지파에 속한 사람들이에요. 저는 뉴미디어 영역에서 잇사갈이나 오바댜 같은 삶을 살아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매일매일 주님 앞에 나아가 나는 죽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나타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죠.

사실 신앙 관련 인터뷰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는데요. 하나님을 대외적으로 이야기할수록 고린도전서 9장에서 사도 바울이 언급한 두려움이 생겼거든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갓피플과 인터뷰 했으니 더욱 제 자신을 쳐 복종시켜야겠네요(웃음). 예수님 안에 늘 거해서 제 생각대로 말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부탁드려요.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글, 사진 = 짱기자 페이스북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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