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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미워하세요…”

 2016-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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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다. 그곳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이름 자체도 ‘떡집’이다. 그 땅을 풍요롭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반영됐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에 어떻게 흉년이 올 수 있단 말인가?

‘아니, 어떻게 저렇게 예수를 잘 믿는 가정에 저런 아픔이 찾아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으로 가득한 것이 인생이다.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인생의 흉년이 몰아닥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 잘 믿는 어떤 사람이 예배를 드리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졌다. 그 소식을 들은 교인들은 다 같이 문병을 가서는 “하나님,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옵소서” 하며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셨다. 할렐루야! 우리가 흔히 듣는 간증들이 대개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병 주고 약 주는 분이신가? 처음부터 다리가 부러지지 않도록 지켜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부러뜨리셨다가 기도하면 고쳐주시는가?

여기에 머물면 우리의 신앙은 바닥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사고를 만나거나 아픔을 당할 때 “이것을 해결해주옵소서. 고쳐주옵소서”라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내게 왜 이런 아픔이 찾아왔습니까? 이 고통을 통해 제게 무엇을 말씀하길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해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인 베들레헴에 흉년이 찾아왔다. 떡집에 떡이 떨어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씨름하면서 그 고난을 통해 내게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주길 원하시는지 깊이 살폈어야 했다.

그러나 엘리멜렉은 그러기 싫어서 도망쳐버렸다. 현실에서 도피한 것이다. 이것이 비극의 출발이었다.

우리는 엘리멜렉과 같은 실수를 범해선 안 된다.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이 찾아오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씨름해야 한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 7:14)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의 신앙은 수준이 너무 얕다. 모든 것이 우리 위주이다. 하나님께서는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두 가지가 병행되게 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이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날 형통하면 그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것이고, 흉년과 고난이 찾아오면 깊이 돌아보아 하나님이 이 일을 통해 무슨 말씀을 주시고자 하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아픔, 밤에 잠 못 이루며 신음하는 절망적인 실패, 말로 할 수 없는 인생의 흉년이 찾아왔을 때 그 고통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고난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요, 변장하고 찾아오는 축복의 도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수준으로까지 성장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 말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 요한복음 14장 1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장 28절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 시편 119장 67절

† 기도
주님, 제 인생의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모든 날들 속에서 주님의 뜻을 구합니다. 늘 주님 안에 거하며 사는 생명의 삶 살길 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아픔과 고통이 찾아오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씨름하십니까? 내 방법대로 도피하십니까? 주님께 나아가 고통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세요.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