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효민(가명)이는 마음을 잘 열지 않는 친구였습니다. 상담 도중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효민이는 관심이 없다는 듯 심드렁하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다니다가 관뒀어요. 동갑내기 아이들이 한 학년 아래 후배들을 불러 놓고 예의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혼을 내잖아요. 교회 안에서조차 그러는 게 이상해서 그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더니 착한 척 한다며 저를 왕따 시키더라고요.
교회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마음 아플 땐 예수님을 생각해. 그 분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도 배신을 당하셨지만 그 순간에도 그들을 사랑하셨고 하나님께 감사하셨어.’라고 하시대요. 너무 뻔한 말 아니에요?”
뭐라고 말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는데 “너무 뻔한 말 아니에요?”란 말이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지요.
그러다 문득 몇 달 전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올해 초부터 충남 청양에 있는 작은 개척교회에서 아동부 친구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린 제 자녀들을 데리고 오갈 일을 생각하니 결정이 쉽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그 무렵 뜻밖에도 중고차 한 대를 얻게 되었고, ‘아, 그곳 아이들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음성이구나’라고 여기며 즐겁게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주일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그만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눈길에서 미끄러지며 앞 차를 들이박았고, 결국 폐차해야만 했지요. 가족들과 앞 차의 탑승자들이 모두 안전한 것을 확인한 후에 감사기도를 드린 것도 잠시, ‘왜??’라는 물음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왜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하려고 시간을 쪼개고 휴식 시간도 내려놓은 종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이런 물음과 함께 짜증, 원망, 더 나아가 분노 등의 감정이 찾아왔고, 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믿음 없는 전도사 같으니!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야지!!’ 하는 죄책감까지 밀려왔습니다.
제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겠네. 만약 누구 하나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어? 하나님의 크신 뜻과 계획하심이 있을 거야. 성경 말씀에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했잖아. 힘내!!” 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 말에 100퍼센트 동의했고, 제 주변의 누군가에게 이런 일이 생겼다 해도 비슷하게 말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알아, 나도 다 알아!! 머리로는 너무 잘 알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고.’
전도사라 하면서 제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이 창피해서 대놓고 말은 못했지만 저 혼자서는 수없는 감정의 포물선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일 친한 친구인 목사에게 연락을 해 한바탕 하소연을 했습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줄 강력한 메시지가 필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내심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게... 하나님이 잘못하셨네.”
목사 친구의 이외의 반응에 저는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아파하고 나자 비로소 제 모습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헌신을 하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무엇으로든 갚아 주시겠지!’ 하는 욕심과 바람이 제 마음 아주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주시지는 못할망정, 있는 것 마저 가져가시다니!’라는 원망과 분노가 있었고요.
하나님께서 “혹여라도 네가 그런 것을 기대하고 가는 것이라면 나는 그 길을 기뻐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타인에게 자주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가 바로 힘들어하고 있는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정적 감정에 빠져 있으면 안 된다며 자신을 다그치던 모습 그대로 상대도 어떻게든 그러한 감정이나 상황에서 빠져 나오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감정이 가라앉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다른 것들이 보이고 생각도 정리할 수 있으니까요.
“많이 힘들었겠네.”
효민이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가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효민이의 눈빛이 잠시 흔들리는 것 같았죠.
“쌤이 안아주고 싶은데, 잠깐 안아줘도 될까?”
제가 두 팔을 벌리자, 효민이는 오글거린다며 엉덩이를 뒤로 빼다가 잠시 후 가만히 제 품에 안겼습니다.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던 효민이는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