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30대 초반의 여 집사님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시댁 식구와 갈등을 겪고 있었고, 방관만 하는 남편에게 서운한 감정이 커져 자주 다투다 보니 우울감을 많이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시어머니, 형님, 남편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마음이 쉽게 바뀌지 않아요. 믿지 않는 가정으로 시집오면서 식구들을 모두 전도하겠다고 다짐했거든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품어라.’라고 하시니 그 말씀에 응답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데, 자꾸 어긋나기만 해요.”
“그런 일이 있을 때 어떤 감정이 드세요?”
“슬프고 우울해져요.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곧 죄책감이 드는 것 같고요.”
그 분은 자신의 주된 감정을 ‘우울과 죄책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집사님과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로 연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사님은 선녀 역을 맡아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간 다음 시어머니에게 구박을 받는 상황과 집으로 돌아온 나무꾼이 시어머니 편만 들자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상황을 연기했습니다. 정해진 대사나 사전 리허설이 없는 즉흥극이었지요.
처음에는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억울함과 슬픔을 이야기하던 집사님은 어느 순간 시어머니와 나무꾼을 향해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었습니다.
“어머니,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도대체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왜 매번 나만 참아야 하냐고.”
연극을 마치고 나서 그 집사님은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한참만에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연극 속에서는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고 있더라고요. 제 감정은 우울과 죄책감보다는 분노였나 봐요.”
‘분노’라는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고 그런 감정을 갖게 된 이유를 탐색해가면서 집사님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울과 죄책감’만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던 것들이었지요.
크리스천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자신의 ‘감정’을 바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타인을 향해 부정적 감정을 품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면하거나 덮어두려고만 합니다.
'감정'은 어떤 것에 대한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어떤 감정이든 감정 그 자체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그런 감정을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으로 나누고, 부정적인 것 중에서도 더 부정적인 것과 덜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은 사람들의 평가기준이 반영된 것입니다.
유쾌하지 않은 감정에 오래도록 머무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의 감정이 뭔지, 왜 생겨났으며, 어떻게 변해 가는지 등을 살피는 것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좋은 정보가 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건네는 인사말 중에는 “얼굴 좋아졌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모두에게 ‘긍정적인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기분 좋게 들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속상해하고, 또 누군가는 화를 냅니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챈 후, ‘그 말에 왜 이렇게 화가 나지?’ 라고 자신을 들여다본다면 자신의 상황, 겪고 있는 문제, 원하는 것 등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부정적’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감정이 느껴질 경우 이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들여다보기도 전에 어떻게든 없애려고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기쁨, 감사, 사랑’ 등의 긍정적 감정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부정적 감정을 무조건 억압하려고 한다면 변화를 꾀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긍정적 감정까지 억압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핀셋을 가지고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들만 쏙쏙 골라내 버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감정입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오히려 점점 모든 감정에 무뎌져서 기쁨과 행복 같은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안내해드립니다.
첫째, 우리가 감정을 알아채지 못할 때에도 우리의 몸은 이미 반응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화불량, 두통 등의 가벼운 증상부터 심각한 병까지 우리 몸이 신음하며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면 혹시 자신의 감정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자기보다 약한 상대(자녀, 후배)나 편한 대상(가족, 친구)에게 이유 없이 짜증이나 화를 내고 있다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대상을 잘못 찾아 표현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셋째,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해야 할 때조차 “~라고 생각한다”, “~해야 한다(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우리의 가치 판단이나 사고가 먼저 작용한다면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것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넷째, 상황에 휩쓸려 자신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혹은 혼자 있을 때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반복된다면 지금 이 감정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