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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제 안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2016-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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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신앙이 있다고 두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 잘 믿는다면서 그런 일을 당하느냐?”라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신앙인도 살아 있고, 살아 있기에 삶의 파도를 타야 한다. 그러나 풍랑에 흔들리는 배 안에서도 예수님이 그 배에 타고 계심을 알고 그분을 깨우는 것이 신앙인이다.

예기치 않은 두려움은 예수님이 그 배에 함께 계시다는 사실에 둔감해지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두려움을 붙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내가 죽게 된 것을 왜 돌아보시지 않는가?’라며 하나님께 항변한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제자들은 먼저 예수님을 깨워야 했다.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시며 이르셨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다.

제자들은 현실적인 문제로 아우성쳤지만 하나님은 그 문제를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시며 그들에게 이를 체험시키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두려움을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계셨다.

그것은 두려움과 맞서는 것이다. 두려움 앞에 자신을 과감하게 노출시켜야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어느 곡예사가 거대한 폭포 위에 외줄을 걸고 외줄타기에 성공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 곡예사는 한 단계 높여 자전거를 타고 외줄타기로 폭포를 건넜다. 사람들은 더 큰 환호를 그에게 보냈다. 곡예사가 열렬히 환호하는 군중에게 물었다.

“내가 사람을 업고 이 외줄을 탈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사람들이 역시 환호하며 “믿습니다” 하고 외쳤다. “그렇다면 누가 내 등에 업히시겠습니까?” 곡예사의 물음에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고 슬쩍 뒤로 물러섰다.

우리는 배에 함께 타신 예수님은 믿지만 그분이 내 삶에 나타내실 초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에 나를 맡기는 일은 어려워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실제 내 삶에 두려움이 올 때는 그분의 등에 업히기를 주저할 때가 많다.

내가 휘말리고 있는 이 두려움의 현실 속에서는 하나님도 어쩌실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의 한계로 내 두려움의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개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라고 하셨다. 두려움과 믿음을 대조시키셔서 그 상반됨을 알리셨다.

믿음은 창조주이신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이 실제로 두려움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그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도 손댈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눅 21:18).

하나님은 인간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계신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고 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능력을 믿어야 하고, 우리의 두려움을 잔잔케 하실 그분의 사랑을 믿어야 한다.

† 말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장 4절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히브리서 4장 15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고린도후서 5장 7절

† 기도
믿음이 부족하여 주님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했던 모습들을 회개합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내 인생을 맡깁니다. 내 눈과 마음이 언제나 주께 향해있기를 소원합니다.

† 적용과 결단
당신은 언제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그 두려움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극복해보세요.





† 지금 교회와 성도에게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