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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가정

고난의 상황에서 어떻게 원망하지 않을수 있을까?

동점으로 연장전까지 가는 야구 경기에서 이길 수 있을지 두근두근합니다. 다행히 응원하는 팀은 승리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스포츠 뉴스를 보며 응원하는 팀의 경기 결과를 들을 때 마음이 편안합니다.


가끔 끝이 보이지는 않는 고난가운데 차라리 내 힘으로 끝내고 싶은 욕심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시작이 내가 아니었던 것처럼 고난의 끝도 내가 아님을 고백합니다. 한 걸음일지라도 주님 손 붙잡고 걸을 때 그 끝을 만날 수 있기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오해해서 생긴 내면의 근심과 걱정, 불안, 우리의 평안을 잠식하는 것들이 다 사라지는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확신컨대 우리가 겪고 있는 근심의 90퍼센트 이상은 사탄에게 속아서 생기는 근심이다.

나의 큰딸이 지금 삼수를 하고 있다.
딸이 고등학교 3학년 때, 나는 딸아이가 목표한 모 대학에 꼭 들어가리라고 확신했었다.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딸아이는 수능 시험을 망쳤다.

그날, 딸아이는 집에 와서 밤 11시까지 울었다.
드디어 아이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나는 세 아이를 다 불렀다.

그리고 큰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빠는 열아홉 살인 네가 오늘 흘린 절망의 눈물이 너의 스물아홉 살, 서른아홉 살 때 흘리게 될 눈물을 막아주는 보약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이 눈물을 절대 잊지 말기를 바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깊이 돌아보면 좋겠구나.”

아빠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받은 덕분인지 딸아이는 감사하면서 재수생활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수능 시험도 망쳤다. 첫 해에는 완전히 망쳤고, 둘째 해에는 그냥 망쳤다.
그래서 목표했던 대학은 아니지만 대학교에 합격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도저히 포기가 안 됐나보다.

“아빠, 한 번만 더 도전할 기회를 주시면 안 돼요?”
아이의 간곡한 부탁에 학교를 휴학하고 한 번 더 도전해보고 안 되면 다시 복학하라고 권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그 길로 가서 입학 등록을 취소하고 등록금을 찾아왔다.
그렇게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고 삼수에 들어갔다.

두 번의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세 번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 아이를 두 번씩이나 실패와 고통의 자리로 몰고 가시는 것일까?

그 답이야 내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정직하게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까지 이 문제로 하나님을 원망해본 적이 없다.
원망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한 번도 내 딸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우리 딸이 사무엘상 1장 18절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20절은 모른다.
그러나 확신하는 것은 이 일이 하나님이 나와 우리 딸아이를 벌주시거나 내치시기 위함이 아니라 준비시키고 훈련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임신을 막으심으로”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한나의 임신을 막으셨다. 한나도 주변의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생각처럼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다른 계획이 실행되고 있었다. 한나의 고통을 통해 한나가 영적으로 무르익도록 만드시고,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인물을 준비시키신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입시로 인해 어린 딸이 겪고 있는 이 힘든 시간이 훗날 딸아이의 인생을 훨씬 더 풍성하고 깊이 있게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딸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이끌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우리에게 이 확신이 필요하다.

비록, 나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합 3:17,18

여기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17절의 ‘비록’이다.
이것은 ‘무화가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에서부터 시작되는 결핍을 의미한다. 또한 18절에 나오는 ‘나는’이라는 단어이다.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한다는 내용이다. 신앙인의 삶이란 이처럼 ‘비록’과 ‘나는’의 결합이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고, 밭에 소출이 많고, 우리에 양이 넘치고, 외양간에 소가 넘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다 하는 것이다.

한나가 누린 기쁨은 자기에게 없던 것을 얻게 된 결과물로 인한 기쁨이 아니었다.
한나는 끝내 기도 응답을 못 받는다 할지라도, 끝내 아기를 주시지 않는다 해도 ‘비록’, ‘나는’이라고 고백했다. 이것은 많은 고통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과 씨름한 기도의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열매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를 갈망한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 자녀들이 속을 썩일 때도 이 이야기를 적용해보라.
예를 들어 남편이 속을 긁어놓고 출근하면, 그 남편의 등을 보면서 ‘비록’, ‘나는’이라고 하면 많은 것이 해결될 것이다.
“‘비록’ 자상한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리라.”
우리의 영적 수준이 이런 고백을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이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그 성령님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임하시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증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기도하고 통곡하며>이찬수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