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골목교회 커피마을

[백석동 1416-5번지 커피마을 #8] 제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면...

★ 7편 – 그 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더니 하루가 다 지났습니다 ▷

# 마을 안의 성소

뉴질랜드 남섬 데카포 호수에는 '선한양치기의 교회'가 있습니다. 경치가 아름다운 호수에 돌로 지은 작은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곳의 제단 부분에 호수가 보이도록 창을 가로로 내놓았는데, 그 위에 올린 작은 십자가를 통해서 호수를 바라보는 풍경이 꽤나 근사합니다.

저는 사진을 통해서 그 교회를 알게 되었는데, 자료를 찾다 보니까,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내서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퇴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학교를 쉬기도 했답니다. 무엇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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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거룩한 풍경을 통해서 일상의 삶이 전해주지 못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그곳을 다녀온 친구들에게 데카포 호숫가의 '선한양치기의 교회'는 거룩한 곳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최근 개신교회가 겪는 위기 가운데 하나는 교회와 예배당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룩한 곳, 성소라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이 영향을 많이 주었을 것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지만 사람은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초공간적인 사역을 하시지 않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한계가 있는 공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 공간을 거룩한 곳,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는 거룩한 공간으로 바꿔가셨습니다.

그런데 도시 개척교회들은 냄새가 나는 지하에 정성을 다하지 않는 분위기 가운데 예배를 드립니다. 공간은 어떻든지 간에 설교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그 용도에 최적화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예배당을 값비싼 자재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당 안에 우리의 마음을 담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뭔가 그 장소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의 마음속에 거룩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그렇게 거룩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폴 틸리히는 이러한 공간을 'Sacred Vacant'(거룩한 비움)이라는 용어로 설명했습니다.

일상의 지친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로 나아가도록 돕는 거룩한 비움의 장소가 바로 예배당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마음과 생각을 갖고 '가나예배당'을 마을 속에 거룩한 성소가 되도록 꾸몄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예배당에 와서 거룩한 체험들을 하며 기뻐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지만 사람은 공간을 필요로 하고, 교회도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 로렌스 형제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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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수사 혹은 로렌스 형제(1611-1691)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는 38세의 나이에 파리에 있는 맨발의 까르멜 수도회에 들어갔고, '부활의 로렌스 형제'라는 수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평생을 평수사로 지내면서 부엌일과 샌들 수선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는 일평생동안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고 훈련했습니다. 그의 저서로 알고 있는 책도 그가 죽은 뒤에 수도원에서 그의 글들을 모아서 출판한 것이라고 합니다.

저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하면서 로렌스 형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어떤 힘이 생기는 것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때로는 회개가 터져 나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주님의 위로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개신교 목회자는 대부분 말을 통해 사역을 감당합니다. 그래서 말하는 훈련이 잘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말은 대부분 자신의 존재를 앞서가기 십상입니다. 말로는 다 할 수 있지만, 실제 삶 속에서 그 말을 이루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제 삶의 목표는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아닌 로렌스 형제와 같이 그가 일하는 주방과 일터에 주님의 임재하심이 함께 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하는 일이 커피를 내리고 와플을 만드는 단순한 일이겠지만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면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 팽목항으로 내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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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에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주로 하던 일이 커피마을에서 사람들에게 커피를 타주는 일이었는데, 차마 커피마을의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고난주간에 아이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커피마을의 문을 걸어 잠그고 팽목항으로 향했습니다.

수원까지는 자전거로 이동을 했고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목포에서 내렸습니다. 진도대교 앞에서부터는 걸어서 팽목항까지 들어갔습니다. 봄이 오는 진도에는 유채꽃이 만발했습니다.

그렇지만 앰뷸런스들은 분주하게 진도와 팽목함을 오갔습니다. 4월 23일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도착해서 그곳에서 준비해 간 커피와 초콜릿을 바다에 뿌리면서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아이들 떠나는 길에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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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모습이 우연하게 KBS '다큐 3일'의 카메라에 찍혔고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월호 참사를 목격하면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토록 비참하게 죽어간 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만들어 낸 참극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의 마음이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아픔이 치유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이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나 생각하며 다시금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결국 저는 진도 팽목항을 다녀온 뒤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다녀온 뒤로도 며칠 동안 아무일도 못하고 지낼 때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습니다. 몇 년 전 커피마을을 취재했던 분이신데 세월호 단원고 생존자 71명이 고대 안산병원에 있는데 상담을 받지 않으려 해서 대학생들이 들어가서 멘토링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커피바리스타 멘토링의 강사를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커피 기구를 준비해서 4일간 세월호 생존자 학생들에게 커피를 가르쳤습니다.

제 수업에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13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2달간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한 주에 두 번씩 커피바리스타 멘토링을 진행했습니다. 2014년 7월 31일에는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있는 강화에서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그곳에서 '해변테크노파티'란 이름으로 커피파티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다음주 계속).

글, 사진 = 안준호 
마을지기라고 불리는 안준호 목사(참포도나무교회)입니다. 저는 어느 날 부터 한 마을(백석동 1416-5번지)에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동네아이들과 뛰어놀며 어느덧 바리스타가 되었고 목수가 되었습니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나누듯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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