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기도로 불을 내리게 하고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내리게 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일에 열정을 다한 사람이다. 그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과 대결하여 이긴 사람이다. 기손 시내를 그들의 피로 붉게 물들인 사람이다. 정말 대단한 신적(神的) 사역을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신다. 인간에게는 잠잠히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이 있어야 함도 아시고, 푸근한 쉼이 있어야 함도 아시며, 떨어진 체력을 위해 영양분을 취해야 한다는 것도 아신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큰 위로가 된다. 연약한 존재 그 자체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 역시 은혜다.
엘리야가 또 한 번 이세벨과 겨루어 이기고, 이후로도 승승장구했다고 치자. 우리는 그에게서 인간적인 면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는 그저 전설의 인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가 나와 같이 쓰러져 울었기에 그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연결 고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울 수 있을 때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피조물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
문제는 하나님이 쉬게 하셔도 인간 자신이 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사명으로 일을 시작하지만 열심을 내다보면 오히려 일에 사로잡혀 지내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경우는 일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쉬는 것에 대해 자유함을 누리지 못한다. 쉬면 마음이 초조해져서 ‘내가 이렇게 놀아도 될까?’,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발버둥치는 것이다.
잠잠히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동의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해야만 나에게도 존재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신앙을 깨닫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인내와 사랑으로 그를 어루만지신다.
천사의 어루만짐과 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한 엘리야를 하나님은 호렙산으로 부르셨다.
영적으로도 탈진한 엘리야에게 새 힘을 주시려 함이었다. 우리의 힘은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크리스천은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몰입되어 있는 엘리야가 시선을 돌려 주변을 볼 수 있게 하시려고 칠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이 여전히 하나님 앞에 순결을 지키고 있음을 알려주신다.
지친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자기연민에서 벗어나게 하시기 위한 방법이었다.
우상의 시대에 자신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칠천 명이나 남겨졌다는 말은 엘리야에게 ‘나처럼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많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자기 혼자뿐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시고 새 사명을 주셨다.
† 말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 시편18편 1절,2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 이사야 40장 31절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 시편 63편 1절
† 기도
오직 자신에게만 몰입되어 있는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돌리게 하소서!
우리의 힘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연약하고 유한한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려 우리의 힘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