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하늘을 올려다보며 등교준비하는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주며, 길을 건널 때는 뛰지 말고 건너라고 한마디 더 건넵니다. 아이를 낳고 나니 걱정스러운 마음만 커저 갑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마스크를 씌우는 일도 조심히 길 건너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기도입니다. 나의 소유가 아닌 나에게 맡겨주신 주님의 자녀를 주님께서 온전히 돌보아 주시기를 은혜로 바라며 구하는 무릎으로 기도하는 부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모의 모범이 자녀를 세운다
가정도 마찬가지 아닌가?
옛 어른들에 비하면 지금 부모들은 학력도 높고 자녀를 향한 교육열도 높다.
그런데 오늘날 자녀교육은 왜 이렇게 혼미해진 것인가?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 어머니도 가난한 동네의 평범한 여인에 불과하셨다.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교육 이론에 대해 많은 정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평범한 어머니의 권위와 영향력을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다.사춘기를 지나면서도 ‘담배를 피워야겠다, 술 진탕 마시고 내 맘대로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어머니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잔소리가 많으신 분도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과묵한 분이셨다.
그런데 내가 왜 어머니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었을까?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몇몇 장면이 있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나가다 보면 안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문을 빠끔 열어보면 새벽 4시쯤 되는 그 이른 시간에 어머니가 담요를 둘러쓰고 기도하고 계셨다.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는 불분명한 발음 속에서도 또렷하게 반복되는 단어가 있었다.
“찬수, 찬수, 찬수”였다.
암만 철없는 중학생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기도하고 계셨다.
‘어머니가 날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구나!’
그러니 내가 어떻게 나가서 나쁜 짓을 하며 돌아다닐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도 나는 그 어머니의 영향력 아래 있다.
아흔이 넘으신 지금도 여전히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의 기도와 격려도 무섭지만, 무엇보다 나는 어머니의 기도를 실망시켜드리는 자식이 되고 싶지 않다.
<오늘살힘>이찬수 p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