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여운학 303칼럼

날마다 하나님의 섭리에 감동 감격하며 - 여운학 장로 칼럼

사람의 몸은 소우주라고 한다. 그토록 오묘한 사람의 몸은 어떻게 누가 창조하였으며 어떤 의지에 의하여 섭리되고 있는가? 그 복잡하면서 질서정연한 조직구조를 갖춘 사람의 몸은 누구의 의지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성되었을까?

정자와 난자의 기이한 만남으로부터 겨우 10개월 안에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춘 채 세상에 나온다는 것부터 신비롭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문명인이나 야만인이나, 여자나 남자나,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입과 코와 두 눈과 두 귀가 얼굴 중심선을 따라 질서있게 다 갖추어 있어야 할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것도 신기하기 이를 데 없다. 또한 가족 고유의 유전인자를 갖는다는 사실도 신비 중의 신비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육신의 모양새와 색깔이 민족에 따라, 가족에 따라, 각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르기도 하면서 서로 공통점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의 몸 속에 갖추어져 있는 위와 십이지장과 비장과 간과 허파와 소장과 대장과 콩팥과 간뇌와 좌뇌와 우뇌와 동맥과 정맥과 모세혈관과 피와 임파선과 임파액과 각종의 내분비액과 그밖의 모든 조직과 기능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상호보완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신비롭고 감동적이며 놀라 기절할 지경이다.

더 나아가 이른바 인간의 오감과 마음의 생각과 영혼에 이르러서는 신비의 극에 달한다. 그 창조자의 권능에 대한 찬양이 절로 나온다.

이 모든 것을 우연의 발생이라 한다면 그는 바보가 아니면 머리가 돈 사람이 아니겠는가? 이 모두는 내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이요 그분의 섭리임이 확실하다.

나는 일찍이 성경말씀에 감동되어 이를 반복하여 읽는 가운데 절로 암송되는 말씀이 늘어가는 기쁨을 경험했다.

이미 암송한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반복 암송하는 가운데 묵상(黙想)의 오묘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고, 특히 창조(創造)에 관한 말씀에 매료되어버렸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0-2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롬 11:33-36).

3천년 전 이스라엘의 왕이면서 시인이었던 다윗은 시편 139편 13,14절에 이렇게 노래한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시 139:13,14)

 

나는 요즘 두 달 가까이 집에서 주로 누워 산다. 빙판에 넘어져서 왼쪽 발목 위 경골 아랫부분이 약간 부서져 튀어나왔기에 깁스를 한 채 자연치유만을 기다리고 있다.

튕겨져나온 뼈와 원뼈 사이를 골수가 나와서 채워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병원의사도 오직 자연치유가 이루어지기만 기다리라고 말한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이 낫게 해주실 줄 믿고 오랜만에 갖는 쉼을 감사하면서, 그동안 303비전 유니게과정 강의에 바삐 뛰느라 다소 소홀했던 말씀묵상과 성경, 신앙양서 읽기와 상담에 관한 책읽기를 즐긴다.

그러면서도 헤아릴 길 없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권능에 놀라고 감격하고 롬팔이팔의 하나님을 찬미하며 감사하며 백발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