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골목교회 커피마을

[백석동 1416-5 골목교회 커피마을 #1] 개척 후, 결국 실어증이 왔습니다

# 이유는 없어, 개척교회가 싫을 뿐이야

개척교회를 시작하는 전도사와 목사에게는 모두 저마다의 꿈과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목회 현실은 매우 엄하고 냉혹합니다. 지금 사역하는 참포도나무교회는 2004년 1월 16일에 개척예배를 드리면서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개척 목회를 준비하던 세 가정이 함께 뜻을 모아 작은 원룸에서 예배를 드리며 개척장소를 찾았습니다.

장항동 731번지 한 호를 분양받아 예배당으로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그때 교회 현관에 요한 웨슬리의 ‘세상은 나의 교구다’라는 구호를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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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교회는 새로운 신자들을 만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개척 초기부터 전도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강원도 평창에 자리한 ‘복음농장’으로 가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농사를 지어 수확한 농산물로 전도했습니다.

옥수수 만 개를 새벽에 쪄서 트럭으로 옮겨 2천 명과 나누면서 “예수 믿으시고 동네 교회 나가세요”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2천 명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그렇게 전도를 하면 저희 교회에 한 번만 나와주길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 명도 저희 교회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농사를 짓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해 가을에는 2천 포기의 배추를 김장해서 젊은이들의 거리에서 문화축제를 열고 지역주민과 김치를 나누며 전도를 했습니다. 대학원에서 받은 장학금을 모두 그곳에 쏟아붓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 뒤 겨울에는 장모님이 직접 담근 된장과 고추장을 1킬로그램용 용기에 넣어 2천 명과 나눴습니다. 그 뒤에는 깻잎김치를 나눴고요. 그 일을 하면서 저는 ‘단 한 명’의 사람이라도 저희 교회에 나와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제 발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전도를 하면서 한 가게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농산물을 챙겨주었습니다. 그 분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일산의 대형교회를 다니는 집사님이었습니다.

그 분을 전도하려고 나눈 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챙겨 드렸던 것이죠. 귀한 농산물을 받고 기뻐하시면서 저희 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신대원 전도학세미나 때 그 분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지역교회 중에서 이름을 아는 다섯 교회를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그 분은 일산에서 제일 큰 교회부터 5위까지 자랑스럽게 이름을 써넣으셨습니다.

다른 학우에게 부탁해 그 집사님에게 혹시 바로 옆 건물에 있는 개척교회는 모르시냐고 물어보니, 모르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옆 건물에 들어와서 매번 인사를 드리고 귀한 농산물을 나눠주었던 개척교회로 기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인터뷰를 통해 저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유는 없어, (사람들은) 개척교회가 싫을 뿐이야.'

저는 그런 경험 이후에 기존교회에서 홍보처럼 보이는 ‘전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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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어증에 걸린 그 때

교우들과 일 년이 넘게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했던 전도가 실패로 끝나자, 목회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목회를 꿈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목회자가 열정을 다해 기도하고 설교하고 진행한 일의 결과가 아무것도 없으니, 교인들도 조금씩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제 목회에 맞이한 첫번째 위기였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제 안에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가장 크게 바라는 것은 '설교자'로서 능력일 것입니다.

그런데 개척 목회를 하면서 한 3달 정도 설교를 하다보니, 설교할 때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안의 한 영이 떠서 설교하는 저를 보며 비웃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왜 그렇게 큰 목소리로 떠드느냐? 너는 예수를 믿지도 않는데 왜 성도들에게는 예수를 믿으라고 강변하느냐?'라는 목소리가 제 안에서 분명하게 들려오다보니 설교를 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설교자가 자신이 설교하는대로 살아가는 일은 분명 쉽지 않으며 어떤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은혜 가운데 설교하며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당시 제 모습은 설교단에서 선포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설교단에서는 '사랑, 소망, 용서와 평화'를 전했지만, 제 삶에는 그 어느 곳에도 말씀에서 전했던 것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폴 틸리히와 같은 신학자들에게는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하나님에 대해선 아는 바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말은 계속해서 허공을 맴돌고, 점점 말을 더듬게 되었고,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조금씩 말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겪은 실어증의 경험은 '존재'와 '삶'의 불일치였습니다. 제가 하는 설교와 실제 삶의 괴리로부터 오는 분리가 제가 극복해야 할 위기의 첫번째 숙제였습니다(계속▷)

글, 사진 = 안준호 
마을지기라고 불리는 안준호 목사(참포도나무교회)입니다. 저는 어느 날 부터 한 마을(백석동 1416-5번지)에 들어와 살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동네아이들과 뛰어놀며 어느덧 바리스타가 되었고 목수가 되었습니다. 한 잔의 맛있는 커피를 나누듯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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