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창 42:6,9).
1. 삶을 관통하는 꿈
어린 요셉이 꿈을 꾸었다. 그리고 그 꿈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다. 그러나 결국 꿈대로 형들은 그에게 절을 하게 된다.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가도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을 놓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그 비전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시간보다 더 길다.
요셉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기근에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을 만나게 되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그의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은 비전이었다. 젊은 날의 꿈은 현실에 부딪치면서 사라지고 추억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전은 현재의 삶을 연단시키고 일정한 방향을 향해 가도록 격려한다. 비전이 비전되는 것은 구체성이나 현실성이 아니라 ‘헌신’이다.
2. 더 많은 일들이 남아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인정을 받아 형들보다 높아지는 꿈을 꾼다. 그러나 비전은 누구의 인정을 받아서 이룰 수 없다. 분쟁을 일으킬 뿐이다. 누군가의 인정을 받으면 그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노예 생활로 연단된 요셉의 삶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나 그들이 요셉을 감옥에 보냈다. 자신의 삶과 상관없이 은혜의 열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다 믿으면 그들의 마음이 바뀔 때 낭패를 겪을 수 있다.
훈련의 열매가 내 삶에 충만하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것은 ‘이제 시작’이라는 신호다. 더 많은 일들이 남아 있다. 작은 열매를 나를 위해 쓰고자 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 아버지 야곱의 인정을 통해 겪었던 쓰라린 일들을 다시 경험할 수 있다.
요셉의 훈련됨이 아무 의미가 없음이 밝혀졌어도 그는 하나님께 헌신했다. 그리고 주신 비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위해 인정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비전은 우리를 연단한다. 누구의 꿈이며, 그 꿈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충분히 검증되기 전까지 시험은 계속 될 것이다.
3. 어려울 때 주어지는 은혜
요셉은 감옥 안에서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더없이 암울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큰 능력이다. 또한 전무후무한 요셉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만을 간절히 의지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그는 총리가 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은혜를 입는다.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창 41:8).
우리는 삶이 어려워도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며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 어려운 중에 배우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삶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배우고만 있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날이 있을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우기 전에 스스로의 길을 찾아 받은 비전을 버린다. 자기 욕심을 이루려다가 안 되면 작은 욕심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4. 살아있는 사역
사역자가 비전을 받아야 사역이 시작된다. 비전이 살아있고, 사역자가 비전에 헌신하는 한 사역은 죽지 않는다. 비전을 주시고 사역자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뜻이 살아계시는 한 사역은 살아있다. 그러나 비전이 힘을 잃고, 사역자들이 다른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사역은 죽는다.
비전은 거창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가정을 이끌 때 어떤 가정이 되기를 소망하는지 기도하고 받은 응답대로 가정을 섬기는 것도 비전이다.
비전 자체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에 헌신하고자 하는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요셉도 구체적인 비전을 알아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험한 연단이 있었다. 살아남은 비전이 비전이다. 그래서 고통의 시간 내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5. 사명 중심의 관계 이루기
비전에 대한 결정권은 하나님께 있다. ‘비전 중심의 삶’에는 비전을 이루고자 하는 관계가 형성된다. 임꺽정과 다윗이 다른 점은 ‘비전이 있는가’의 차이다.
다윗과 임꺽정의 공통점은 불의한 권력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만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들과 도적떼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나라의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혹시 임꺽정 같은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면 당장 버려라.
관계형성이 공동체 자체다. 도적떼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나라의 귀한 공동체가 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내용이 그것을 결정한다.
비전을 받고, 관계가 비전을 이루기 위한 사명 중심의 관계가 되었다면,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하면 된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일인지가 중요하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맡겨진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작은 일이 크게 되는 것은 사람들의 기획이 아니다. 하나님의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