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시간에 간증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목적도 없이 방황하며 사춘기를 보내다가 주님으로 인해 삶의 목적을 알게 되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도 많이 올랐고 덕분에 명문 학교에 원서를 내었다고 하셨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저는 먼저 알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차 계셨기 때문이죠.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 명문대를 합격했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크실까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그분의 이야기가 제 귀에 박혔습니다.
"감사하게 입시에 실패했습니다."
감사와 실패라는 단어는 어울리는것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합격의 기쁨보다 주님이 자녀가운데 함께 하심으로 인해 진정 기뻐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주님.. 저도 그런 사람 되길 원합니다
내게는 세 딸이 있다.
큰딸의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나는 참 많이 기도했다.
딸을 사랑하는 만큼 내 안에 욕심도 많았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에 갈 때도 대학 순위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딸의 대입을 앞두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딸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믿는다.
그 아이들이 믿음의 가문을 일으킬 걸 믿는다.
내가 양육을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대학의 명성이나 스펙이 그들을 축복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고3이 된 딸 앞에서 내 욕심과 자아가 거침없이 드러났다.
그동안 내가 가르치고 믿어왔던 모든 것들을 향해 싸움을 걸어왔다.
내가 그토록 유치한 존재인지 몰랐다.
기도하는 동안에도 내 안의 욕심이 더욱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하나님, 주의 사랑하는 딸이 oo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런 기도가 옳지 않은 기도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oo대학에 입학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부모라면 당연히 중보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서 보다 근본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다.
딸이 진학할 대학 이름으로 내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못된 자아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이 좇는 헛된 명예를 나도 자랑하고픈 마음이 그분을 향해 머리를 치켜들었다.
예수께서는 충돌의 기도 속에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해달라"라고 온전한 순종을 드림으로 승리하셨다.
나는 그렇게 무력하게 승리하고 싶지 않았다.
"목사로 충성스럽게 살아왔더니 하나님께서 이런 복을 주셨다"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가 짚어놓은 뜻에 따라 응답하시기를 원했다.(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주님앞에서 죄송스럽다).
원서를 보내고 기다리는 초조함은 크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하지만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선 합격 통지를 주시기 전에 나와 충돌하셨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충돌하고 계셨지만 나는 그분과 맞서 이길 수 있다고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큰 사건이 터졌다.
새해 새벽기도를 시작하면서 내 건강에 심각한 이상 신호가 왔다.
의사가 악성 종양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내 안의 헛된 과시욕이 철저히 무너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절대 지지 않으신다.
기도의 진정한 축복은 우리의 원함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하니님께서 원하시는걸 우리가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 속에서 우리와 충돌하시는 분도, 우리를 도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간구해주신다(롬 8:26).
그 말씀은 우리가 기도 중에 말이 막힐 때 할 말을 주신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가로채셔서 하나님의 기도로 만들어주신다는 것이다.
정말 해야 하는 기도를 우리의 욕심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로 바꾸어주신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이렇게 바꾸어 주셨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게 하나가 되었다.
우리의 욕심과 자아가 벗겨져버리는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고 친밀해진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만 집착하고 조급하고 경박한 기도로는 그 분을 깊게 알아가지 못한다.
그런 기도에서는 자아가 절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그분 앞에서 두손을 들고 힘없이 항복한 인생이 누리는 축복이다.
기도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충돌하시며 우리의 힘을 빼주신다. 깊은 기도로 들어갈수록 우리의 힘은 약해지고, 하나님은 강해지신다.
하나님과 친밀하기를 원한다면 스스로 약해지는 기도를 배워야 한다.
기도 속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외면하지 말라.
악한 영들과 벌이는 치열한 전쟁보다 더 격렬한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충돌하며 서서히 우리는 무너져간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적 승리이며, 사라지지 않는 기쁨이고, 하나님과 깊이 친밀해지는 축복이다.
무너지고 약해지기 위해 기도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만나게 될 것이다.
<the멈춤>p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