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이러니하게도 참 수치스럽고 쪽팔리는 내면과 마주한 순간, 깨닫게 된다. 아... 이게 진짜 내 모습이구나. 아..이게 나였구나...젠장..진짜 쪽팔리네.. 고상한 사람인 척 하며 우아하게 회개하던 내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 맞다..이렇게 노골적이고 지리멸렬하고 구질구질한 나의 내면이 있었었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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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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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낮아지고 내가 가장 수치스러워지는 순간인데, 그 때가 하나님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된다니. 보잘 것 없이 느껴져서 숨어버리고 싶어지는 나의 낮고 쪽팔리는 순간이 죄 앞에서의 내가 누구였는지 거울로 보게 되는 거라니. 공동체의 사람이 그 거울을 들고 나를 비추고 빤히 바라본다. 죄 앞에서, 사람 앞에서 나는 초라해진다. 그리고 깨닫는다. 아-무 할 말이 없는 존재.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을 만큼의 내 안에 있는 강렬한 죄성으로서의 존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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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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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가 더 진하게 느껴진다. 한 번씩 사람들을 통해 마주하는 내 죄성은, 죄가 큰 곳에 은혜가 깊다는 말을 뼈져리게 느끼게 한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 할 말이 없는 존재. 그게 나였다. 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하나님 자체를 원한게 아니라 내 방식대로의 회개와 내 방식대로의 거룩이라 생각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하나님에게 했으니 됐죠?!그러니까 이제 내 걸 주세요! 하며 강요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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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이럴 경우, 아-이제 깨달았으니 다시 하나님 앞에 바른 모습으로 나아가자! 하며 탁탁 옷털고 나갔을 것이다. 다시 새롭게 리프레쉬! 하면서. 하지만 이젠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뭔가 잘하고 잘나고 잘 보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런 내 모습을 알고 계셨고, 이 모습 그대로 날 사랑하셨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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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았으니 달라져야지!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는 것 자체가 문득 인위적으로 날 포장하거나 애쓰는 것 같았다. 그 상태의 나를 인정하지 않고 수용하지 않고 부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부족하고 죄성의 내 모습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 안의 죄성을 그대로 두며 정당화하겠다는게 아니다. 똑같은 행동이라도 마음의 중심 본질 자체의 시작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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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이 뭔가 아, 그럼 그 상태의 나를 부정하고 싶으니까 나의 노력과 애씀으로 달라지려 했었다면, 그렇게 달라져서 또 하나님 앞에 나가려고 했었다면 지금은 그 상태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되, 하나님이란 존재 자체에, 관계 자체에 더 집중하고 몰입해서 나오게 되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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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이 애정 표현을 하고 안 좋은 행동을 변화한다해도,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나 바라거나 목적이 있어 하는 것과 상대를 정말 사랑해서 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내 안의 죄성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게 될 때, 상대에게서 보이는 죄성의 모습 또한 네가 어떻게!!가 아닌 그래, 그럴수도 있지_로 좀 더 넓게 볼 수 있게 된다.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란 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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