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할수 있어! 포기하지마!', '나의 성공을 통하여 주님 영광 받으시길 바랍니다.'라는 말들이 익숙해진 만큼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내가 인정 받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더라구요. 흑흑..)
하지만 최고의 자리, 나를 드러내는 자리가 아닌 주님이 드러나는 자리에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감사하며 주님이 부르실때 달려갈수 있는 자리에 우리의 자녀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너는 앞으로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어. 그러니 꿈을 크게 꾸어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노력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할까?
이러한 말들이 흔히 희망을 상징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잘 어울리는 개념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하나님이 최고의 것을 원하신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말이 아닐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찾아갈 때 너의 삶에서 선한 경험들을 하게 될 거야."
알파커뮤니티교회는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사람들이 몰려올 때도 있고 어떤 때는 아주 작은 공간에 모여서 가정 예배처럼 드리기도 한다.
이렇게 예배드리는 중에 교회에 새로운 방문자들이 찾아오면, 보통 이런식의 대화가 이루어진다.
"안녕하세요? 워싱톤 방문 중이신가요?"
"네, 방문 중에 예배드리러 와봤어요."
"그러시군요. 거기서는 어느 교회 다니세요?"
"제가 다는 교회는 그 지역에서 제일 큰 교회예요."
교회의 이름을 묻거나 어떤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물어보도 첫 형용사는 대개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꽤 '크고' 또 '이름'이 있는 교회임을 강조한다.
왜 이런 것들이 중요해졌을까?
물론 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이다.
중형 교회에서 사역했던 나는 제천의 자그마한 교회로 부임해 4년 동안 목회에 매달려본 후, 나의 생각은 완전히 달려졌다. 또한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개척 교회를 시작하게 된 뒤, 내가 그동안 해왔던 행동이나 가져왔던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후회되었던 것은 스스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린 청소년들과 젊은 청년들에게 너무 쉽게, "너의 미래가 열려 있으니, 너는 무엇이나 될 수 있다. 꿈을 크게 가져!" 라고 이야기했던 점이다.
막상 하나님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헌신할 사람들이 필요한 자리에 와보니,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응답하여 살아가는 동료들 그리고 동역자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사무치게 깨달았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이들 말이다.
지난날 '세상은 열려 있으니 무엇이든 최고가 될 수 있다'며 꿈을 심어주던 나의 모습이 얼마나 우둔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지극히 인간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이 후회되었다.
찾아가자!
'내가 전했던 메시지를 듣고 자란 청년들, 최고의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는 청년들은 정작 하나님이 부르시는 헌신의 기회가 왔을 때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만일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가 말씀을 전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최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향'을 찾아가자! 그것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이다."
<주님 제가 뭘 할까요?>p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