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 목사의 글을 읽으면서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 생각났습니다. 시의 내용은 무척 소소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듭니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행복 / 나태주
행복처럼 감사 역시 작지만 마음의 큰 울림을 주는 통로인 것 같습니다. 살면서 큰 것을 감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한 고백들이 매일의 삶을 기적으로 만드는 순간이 될 것 같습니다.
'평생감사'의 저자인 전광 목사의 감사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 동안 내가 감사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기록하는 감사 일기는 보물을 발견하는 시간들이었고, 15년 넘는 기간 동안 날마다 기록한 수 만 가지의 감사는, 내 인생의 감사의 지평을 넓혀 주었고 감사의 깊이를 더해 주었습니다. 나의 생활신조는 하루에 100번 이상 입술로 감사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 처음 미국 땅을 밟은 저희 가족은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식탁 대신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미국을 떠나올 때쯤에는 늘어난 살림살이로 집이 좁다는 불평을 할 정도로 말이죠. 부족하고 가난해도 족하게 여기던 시절을 떠올리면 너무 부끄러운 투정이었습니다.
살아 숨 쉬는 것, 물 마시는 것, 직장 생활하는 것, 걷는 것, 자녀들이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 따뜻한 집에서 편히 사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그저 당연히 누려야 할 내 몫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지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의 은혜는 묘하게도 우리를 교만과 감사 없는 삶을 살도록 유혹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리석게도 나 역시 큰 어려움을 겪는 순간을 마주하고 나서야 ‘아차’ 하며 그동안 감사하지 못한 삶을 후회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축복들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좋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감사하다는 표현에는 인색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일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고, 지극히 감사할 조건들이었습니다. 큰 것을 잃고 나서, 큰 사고를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고 절실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잃고 나서 후회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리 감사하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범한 삶이라도 감사하는 사람과 당연하다 여기는 사람의 삶의 가치는 분명 다를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감사노트’에 소중한 감사의 제목들을 적어봅니다.
★ 두 손으로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두 눈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두 귀로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편안하게 숨 쉴 수 있고, 물 마실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걸음마다 감사하고, 씹을 때마다 감사합니다.
★ 하루 세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 만나는 사람마다 감사하고, 하는 일들마다 감사합니다.
★ 구하지 않았지만 주신 것 감사합니다.
★ 구했지만 주시지 않은 것도 감사합니다.
★ 그 모든 것 속에 주님의 깊은 뜻 담겼음을 알기에 감사합니다.
★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승용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쓰기 작업을 할 수 있는 컴퓨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가까운 곳들을 둘러 볼 수 있는 자전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용한 시골 한탄강변에 감사글방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다양한 읽을거리 책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친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시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주셨으니 순간순간 감사하고, 평생 감사합니다.
결국 감사는 주어진 조건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해석이고, 행복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감사의 크기이다. 부족하여도 감사를 잉태한 자는 감사를 낳고, 풍족하여도 불평을 잉태한 자는 불평을 낳는다는 깨달음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