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후반부의 바울은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다소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뚜렷한 위험 앞에 동료들이 극구 만류했지만
사명과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던 바울입니다. (행20:24)
하지만 바울도 감정을 가진 자였습니다.
두려움이 올라왔고, 마음이 떨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바울에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행 23:11)
분명히 주님이셨습니다.
그 두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은 분명히 바울 곁에 서 계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때 바울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은
공감과 위로에 익숙한 우리의 생각과는 좀 다릅니다.
“힘들지? 그래 이 정도면 되었다. 그만해도 돼.” 하지 않으십니다.
분명히 사랑의 주님이신데,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신데...?
오히려 그분은 바울에게 사명을 다시 확인시켜주십니다.
“힘내, 여기서 멈추면 안 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의 등살에, 수치에 몸과 마음에 생채기가 난 그에게
따뜻한 위로는커녕 이런 말은 좀 매몰차고 야속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이후에도 환경은 변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숨이 차오르는데 더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납니다.
바울은 달리고 또 달려야 했습니다. (행 27:23-25)
그리고 그때도 역시 주님은 바울에게 오셔서
더 가라고, 멈추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Keep Going. Keep Going..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압니다.
주님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바울이 스스로 멈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결국 그 길을 완주한 그로 인해 교회와 믿음의 후배들은 어떤 영향력을 받을 수 있었는지.
멈추었다면 보지 못했을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뛴다고 하지만 내 생각보다 힘이 들 때면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또 스스로 멈춰 서기도 합니다.
어떤 청년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도 제가 힘든 걸 원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분도 제가 행복하길 원하실 거예요.”
한편으로는 맞지만, 한편으로는 틀렸습니다.
이대로 멈춰 선다면 우린 정말 행복해질까요?
지금도 내 곁에 계신 주님은 내가 행복한 것이 싫어서 이곳으로 부르신 것일까요?
우린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돼!라는 질책이 아닙니다.
우린 내 삶의 가고, 서는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있냐는 물음입니다.
너무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시작은 하나님과 함께했지만, 마무리는 스스로 맺고 또 멈추어버립니다.
그래서 그곳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큰 그림을 끝내 보지 못하고,
그분을 충분히 경험하지도 못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청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숨이 찬다고 멈추지 마십시오.
길이 가파르다고 지름길을 찾지 마십시오.
시작이 하나님과 함께였다면,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시라면
멈추는 것도 하나님의 때까지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가장,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때문에 내일도 우리 달립시다.
하나님이 보내신 직장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사역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역할에서.
“Keep Going, Keep Going!
Don't quit! Don't quit!..”
하땅이이야기 - <Keep Go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