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유기성 영성일기

가시같은 사람, 가시같은 환경-유기성 영성칼럼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 (히 5:7)

TV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유격 훈련장면이 나왔습니다. 제게 있어서 군 훈련 기간은 정말 힘들었던 때이였기에, 한참을 보았습니다.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있었습니다. 유격대 교관이 힘들어 하는 군인들에게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고요한 바다는 훌륭한 사공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이제 나와 조교들이 여러분의 거친 파도가 되어 주겠다”

때로 가시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 사람을 품어야 해결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우리를 주님의 제자로 훈련시키는 영적 조교같은 사람이라고 받아야 합니다.

가시같은 사람을 품을 수 있을 때, 우리의 사랑의 그릇이 그만큼 커집니다. 가시같은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환경을 피하려고 하면 또 그런 환경을 만나게 됩니다. 가시 같은 환경도, 자신을 위한 ‘거친 파도’라 믿고 감사할 때, 극복하게 됩니다.

며칠 전 친구 목사가 말했습니다. “나는 잘될 때는 ‘할렐루야’고 어려울 때는 ‘아멘’이야!” 형편이 좋을 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형편이 어려울 때는 감사하며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이 목회를 잘하는 이유였습니다.

성경 중에 가장 제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히 5:7입니다.

예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습니다.(히 5:7)

우리는 가시 같은 한 사람 때문에 밤잠을 자지 못하고, 잠간의 가시같은 환경 때문에 삶의 기쁨도 잃어 버리는데, 아담 이래 지금까지 지구 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시 같은 존재였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겠습니까?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부르짖음과 많은 눈물로써 하나님께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던 것입니다.
가시같은 사람, 가시같은 환경을 만나면 저를 위하여 그렇게 울어주신 주님을 생각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풀어집니다.

아버지 유산을 미리 받아 탕진한 탕자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새번역 성경에 보면 탕자가 아버지에게로 돌아올 때, “그제서야 그는 제정신이 들어서” 라고 하였습니다.

저도 제 정신이 아닐 때가 많았습니다.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요? 이 사실을 인정하니 다른 사람을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제 정신이 아니겠구나!”

사도 바울도 그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딤전 1:13)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던 자들과 괴롭히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면 주님의 눈물이 느껴집니다.

가시같은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것이나 품는 것이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통곡하며 중보하시는 예수님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면 마음이 돌처럼 딱딱한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품게 됩니다.

가시같은 사람도 결국 우리를 위하여 허락해 주신 주님의 은혜의 도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