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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집착 아빠에게 찾아온 크리스마스 선물 - 해롤드 크롱크 감독의 '실버벨'

기독교 신앙과 크리스마스 문화와의 향기로운 접촉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영화 한 편 보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나 홀로 집에>(1990)와 <러브 액츄얼리>(2003)가 쓸고 간 극장가에는 지난 20년 간 산타클로스만이 간간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신은 죽지 않았다1,2>를 통해서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낯설지 않은 해롤드 크롱크 감독의 2013년 작 크리스마스 영화 <실버벨>(Silver Bells)이 개봉된 것은 크리스마스에 내리는 눈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이다.

전형적인 미국식 가족코미디영화의 구조 위에 형성된 이야기 위에 크리스마스 자선냄비와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구세군의 헌신적인 봉사 장면을 얹었지만, 제일 위에는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사랑에 기초하고 있음을 놓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마치 멋지고 맛있는 크리스마스용 3단 케이크의 모양을 떠오르게 한다.

지방 TV방송국에서 스포츠뉴스 앵커인 브루스 달트(브루스 박스라이트너)의 생활관은 ‘이겨야 산다!’(For the win!). 아들 제이슨(켄턴 듀티)의 농구시합을 응원하던 중 심판의 오심에 격분한 그는 그만 심판을 폭행하는 바람에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함에서 종을 들게 된다.

영화는 약간은 이기적인 중년의 남성이 승리에 집착하는 나머지 봉사하는 일 조차도 남과 경쟁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또한 아들과의 갈등을 통해 십대 자녀를 둔 가정의 모습이 비춰지면서 영화는 영락없는 홈코미디의 형식을 갖추게 된다.

경쟁 심리로 가득 찬 리포터가 뉴스 진행자의 자리를 뺏긴 가운데서 일어나는 해프닝과 인생성찰을 다룬다는 점에서 <실버벨>은 톰 새디악 감독의 <브루스 올마이티>(2003)를 닮았다. 가족과의 갈등이 존재하고 구세군 교회의 멜빈 사관(안토니오 파가스)과 같은 외부 신앙인(‘브루스 올마이티’의 경우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과 같은 구조도 비슷하다.

거기다 주인공의 이름 또한 ‘브루스’ 아닌가! 그러나 이 영화의 백미는 이 모든 일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벌어지는데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는 귀환과 변화의 중심이다. 몸과 마음이 집을 떠난 사람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이기적인 인간은 이타적인 존재로 변화한다.

크리스마스 문학의 고전이자 크리스마스 문화의 원형이 되어버린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구두쇠 영감 에브니저 스크루지가 변화한 것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 브루스 달트 역시 창조적인 인생으로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예수의 사랑이 있었다.

해롤드 크롱크 감독은 영리한 사람이다. 크리스마스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인 예수의 사랑을 주인공인 브루스를 통해 말하지 않고 그로 하여금 듣도록 하는 전략을 세웠으니 말이다. 이는 주인공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관객의 시선과 판단으로부터 자유롭게 메시지를 전하는 우회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예수 사랑의 메시지는 먼저 브루스가 봉사를 하게 되는 구세군 교회의 멜빈 사관(안토니오 파가스)의 입을 빌려 나오고, 결정적으로 브루스가 그렇게도 취재하고 싶었던 같은 동네 출신의 미식축구 스타 데릭 젠슨(아서 카트라이트)이 방송에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있는 대로 살리면서 크리스마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역시 놓치지 않고 있다.

데릭 젠슨은 가족으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지 못할 만큼 가난했던 어린 시절 구세군교회에서 받은 선물상자의 기쁨을 얘기하고 있다. 그가 기억하는 말은 “예수님이 널 사랑하셔서 이런 선물을 주는 거야!”. 그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기억은 그가 스포츠 스타가 된 이후에도 그를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래서 그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절 사랑하고 제겐 공이 있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로부터 오는 감동이야말로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미지=네이버 영화 '실버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