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이란 어느 순간 한 번 하고 되는 일이 아니다. 신앙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이 먼저 삶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기 원하신다. 그냥 편하게 해주신다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만드신다는 것이다.
흔히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고전 10:13)라는 말씀을 우리는 곧잘 오해한다. 그 피할 길이 개구멍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피할 길’이란 군대 용어로 “포위망을 뚫고 나간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강하게 해서 뚫고 나갈 수 있게 만드시는 분이다.
예를 들면, 내일이 시험인데 공부를 다 한 사람에게 시험이 시험이겠는가? 공부를 완벽하게 해서 시험을 봤다 하면 백 점 맞을 사람은 한시라도 빨리 시험 보기를 기다린다. 시험이 아니라 증명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창세기 22장 1절에 나오는 ‘시험’이 바로 “증명하다”라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다.
이것은 남포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박영선 목사님이 가장 잘 설명하신 것 같다. 우리가 리트머스 시험지를 갖다 대면 알칼리성인지 산성인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아니? 자, 아브라함을 봐! 믿음이란 이런 거야. 증명해줄게”라고 하신 사건이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실 때 바치는지 안 바치는지 보거나 바치니까 믿음이 있다고 보는 그런 시험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땅으로 가는 삼 일 길을 어떻게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울며불며 갔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나중에 아브라함을 만나면 아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7-19).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부활 신앙을 믿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찌른다고 이삭이 죽는 것이 아님을 믿었다. 죽는다 해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은 것이다.
자기 아들을 칼로 한 번 찌를 때마다 십 억씩 준다고 해보라. 그렇다고 해도 미친 사람이 아닌 이상 어떤 아버지가 칼로 자신의 아들을 찌르겠는가? 못 찌른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이미 그것을 알고 믿었다. 우리 하나님이 생명의 주권자가 되신다는 것을 말이다.
아들이 칼에 찔려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다. “아빠, 나 피가 나….” “그런다고 안 죽어. 하나님이 죽이셔야 죽는 거야. 생명이 하나님께 있어. 하나님이 죽이시려고 하면 너는 그냥 넘어져도 죽어.”
이렇게 아브라함은 부활 신앙을 믿었다. 이것은 그 믿음을 증명한 사건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라게 하신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만들기 원하신다.
신앙이 자란다는 것이 무엇인가? ‘연단’이란 “경험하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삶에서 경험해야 연단이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경험 시키시고 경험을 통해 신앙을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이지 우리를 편하게 하거나 문제를 빨리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요한복음 11장 25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고린도전서 10장 13절
† 기도
하나님이 생명의 주권자 되신다는 부활신앙을 소유한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 같기를 소망합니다.
† 적용과 결단
신앙이 자라기를 소망하시나요?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서 경험하게 하시고 그 경험을 통해서 신앙이 자라게 하심을 꼭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