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행 19:11~16-
[말씀의 배경]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던 유대인이나 헬라인들 대부분이 주의 말씀을 듣게 되던 때에, 바울이 쓰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에 주목하던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악귀를 내보내려 했을 때, 악귀는 예수도,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며 이들을 공격했다는 내용입니다.
에베소는 마술이나 미신 등이 활발히 성행했던 곳이었습니다.
바울의 수건 등을 만질 때 병이 낫거나 했던 이적들은 하나님의 자비였으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기대를 일으키는 요소였고, 복음 자체 보다 표적을 구하는 현상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 라는 명칭은 아마도 신분 높은 제사장 집안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내용으로 보아 거의 사칭에 가깝게 사용된 명칭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묵상하기]
표적만 구했던 이들의 실수와 결과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은 ‘복음 보다 표적에 관심을 둔 것‘을 지나, 바울의 이름을 사칭하기까지에 이른 일을 합니다.
표적이나 이적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한 일종의 방향 표지판 같은 것이지, 그것 자체가 복음이고, 문제해결인 것이 아닙니다.
기적을 경험해 당장 자신의 병이 낫다고 신나하며 돌아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다시 질병이 생기기 전까지는 주께 나아오지 않는 일이 허다합니다.
스게와의 아들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예수‘ 도 아닌 ’바울이 전파히는 예수‘에 의지해 악귀에게 선포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의 주 되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전히 의지해 선포해 나아가야 하며,
들어주시지 않더라도 주를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