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나욧_김종한

소리를 보다(see)

맛을 보다.
맛은 미각입니다. 맛은 보는 것(시각)이 아니지만 한국말의 ‘보다’안에는 ‘체험해보다, 시도하다’ 의
의미가 들어있기에 ‘맛을 보다’라는 말은 아무리 사용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출애굽기 20:18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출애굽기 20장 18절에는 공감각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우레, 번개, 나팔소리, 산의 연기가 그것입니다.
번개와 산의 연기는 시각적인 것이며,
우레(천둥소리), 나팔소리는 청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요.
서술어가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본지라’ 보았다고 되어있습니다.
‘번개와 산의 연기를 보았다’고 하면 맞는 표현이지만
‘우레와 나팔소리를 보았다’하면 무엇인가 이상한 표현입니다.

‘소리를 보았다’… 제 생각에 이런 표현은 잘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보다’를 ‘רָאָה (raah, to see)’ 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 4절에서 ‘슈마(들어라)’라는 표현은 ‘증거하라(증인으로 살아라)’는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천둥과 나팔(소파르)소리를 보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 잠시 묵상해 봅니다.
(저는 평신도 집사일 뿐이랍니다.)

신약으로 가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을 ‘소리’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요1:23)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보았는데 그들은 ‘소리’를 눈으로 본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계실 때 예수님은 기록된(문자화된) 말씀이 아니셨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여전히 존재하셨으니 차라리 ‘소리(진동)’의 형태로 존재하셨는지 모릅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때가 되어 말씀은 형태를 입으시고 백성들에게 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결국 ‘소리’를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천둥이나 소파르 소리를 시각적으로 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보았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따르던 무리들은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진 못했지만 제자들이 전해준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는 이 시대의 믿는 자들도 복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넉넉한 하루되세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